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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Mar 26. 2021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1

경천사지 10층 석탑


꽃망울이 한껏 부풀어 오른 꽃나무들을 보면

개화를 기대하는 마음에 항상 설렌다.

그래서 마냥 바깥으로 나다니고 싶은 마음이

가볍게 나풀댄다.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2005년 10월에 개관한 이래로, 학생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가본 경험이 수 십번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방문한

박물관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인터넷 예약을 해야한다.

하루에 15회 입장이 가능하고 1회당 175명

입장으로 인원수를 제한한다.


우리는 첫 입장 시간인 10시로 예약하였다.

입장 할 땐, 체온 체크와 소지품 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소지품검색은 코로나 이전에도 했었다.)



과거에 박물관을 올 때마다 느꼈던 것은

박물관이 관람객, 특히 단체 관람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원을 제한하니 분위기가

너무도 조용하고 쾌적하여 유물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또 유물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디어 아트를 이용해 3차원적인 설명이

여럿 추가 되어 있어서, 박물관 관람을 고역으로

여기는 어린 학생들도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에서 여섯번 째로 큰 박물관이다.

그런 만큼 실내에 큰 규모의 식당 두 곳, 층 마다 카페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영업을 중단했다.

식당과 카페를 이용할 수 없으니, 관람 시간이

줄어들었다. 과거엔 관람 중에 배가 고프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관람을

시작하여 하루를 오롯이 박물관에 집중했었는데

이제 그것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국립중앙 박물관을 들어가면 중앙홀에 우뚝 서서 

우리를 맞이하는 탑은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정면에서 본 경천사 10층 석탑



높이가 13.5미터에 달하는 이 탑은

박물관의 1층에서 부터 3층 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각층을 볼 수 있다.



측면에서 본 경천사 10충 석탑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과 함께 기구한

유랑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안착한 이 탑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고려말, 원간섭기인

1348년 (충목왕 4년) 경기도 개풍군의 경천사에 

세워졌다. 개풍군은 개성시에 속한 한 군이다.


탑을 조성한 사람은 고용봉과 강융이다.

고용봉은 환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기황후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을 잡았으며 고려로 귀국한

이후에는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과 손잡고 전횡을

일삼았다. 강융은 원래 관노 출신이었으나

충렬왕과 충선왕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충선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을 잡고, 딸을 원나라 승상

탈탈의 첩으로 보낸 후,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다.


이렇게 친원 권문세족이었던 고용봉과 강융에

의해 조성된 이 탑의 1층 탑신부에는 원나라 황실과

고려 왕실의 안녕을 빈다는 발원문이 남아있다.


탑의 모양 또한 전통적인 우리탑의 모습과는

다른 원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재질이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이며

홀수 층이 아닌 짝수층이다. 그리고

기단부 세개의 층은 원나라 양식인 버금아 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1907년 일본의 궁내부 대신인 다나카 미스야키는

이 탑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당시 주민들은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을 동원하여 위협하면서 밀반출했다.


이 일은 당시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발행하는

월간지 코리아 리뷰와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코리아데일리 뉴스

통해 반복적으로 기사화되었다.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호머 헐버트


특히 헐버트는 해외 신문에도 이 사실을 폭로하였다.

비난 여론이 지속되자, 일본은 1918년 석탑을 반환하였다.


반환된 후, 1960년까지 경복궁 회랑에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 경복궁에 세워졌고 1962년 국보

8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대리석이 산성비에

취약하여 1995년 보존을 위해 다시 해체되었다가

2005년 현재의 자리에 안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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