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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Mar 28. 2021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3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3층 불교 조각실로 들어서면 거대한 철불들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이 부처는 철불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힌다.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 절터에서 발견되었는데

높이가 2.88미터이고 무게가 6.2톤에 달한다.

원래 화강암 대좌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만한 무게를 감당할 화강암 대좌의 규모

또한 상당했을테니 전체적인 크기와 철제가 주는

무게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경탄을 느끼게

했을 것 같다. 화강암 대좌는 박물관으로

옮겨 오지 않았고 아직도 절터에 남아있다고 한다.


불상을 가까이서 보면, 벗겨진 흔적이 있는데

원래의 모습은 철 위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도금했던 것이다. 처음 발견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절단된 상태로 밭 가운데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손을 깨뜨려 짊어지고 간 엿장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먹고사는 것이 급한 엿장수의

눈에는 철은 철일 뿐, 부처님이고, 내생이고는

안중에도 없었나보다. 그래서 불상의 가슴께에는

이어붙인 자국이 있고 손가락과 무릎아래 부분은

나중에 보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 철불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유행하였다. 이 시기는 신라의 국운이 쇠하고

지방호족들이 지배세력이 되어가던 때였다.

지방호족들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복을

빌기 위해 철이나 화강암으로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곤 했다. 이 불상도 고려초기인 10세기에

제작되었는데 철불 중에서 통일신라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석굴암 본존불과 비교해 보았다.



석굴암 본존불 출처 매일종교신문



두 불상의 공통점은 오른손을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또 우람한 어깨와 가슴, 그리고

왼쪽 어깨에 얇은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신체 각부의 비례도 석굴암본존불의

비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신라양식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돌을 다듬는 것과 금속으로 주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일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검은 불상, 꼭 다문 작은 입,

길고 날카로운 콧날을 가진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불보다

더 단호하고 강한 인상을 풍긴다.



목조불좌상 조선후기에 제작된 삼방불 중 아미타불



하남하사창동 철조여래 좌상과 대조적인

이 불상이 바로 옆에 전시 되어있다.

내가 대조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거대한 철조여래좌상에서 느끼는 중압감과

긴장감이 이 불상을 보는 순간,

나른하게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굽은 어깨와 앞으로 조금 숙인 머리는 삼매에

든 노승을 연상케 하여 자연스럽다.


박물관에서는 이 자세에 대해 "불단에 봉안된

불상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예불자의 시선을

고려하여 제작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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