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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Mar 30. 2021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4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


연가 7년명 금동여래 입상은 1963년 경남 의령에서

발견된 고구려 불상이다. 발견된 곳이 신라 영역이라

신라 불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광배의 뒷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539년 고구려에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뒷면


4행 47자로 새겨진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가 7년인 기미년에 고구려 낙랑 (평양?)에 있는 

동사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인 

승연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을 

만들어 (세상에)유포한 제29번째인 인현의불을 

비구인 법영이 공양하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연가 7년의 연가는 고구려가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연호로 영양왕 (590 - 618)이

재위했던 시기이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16.2cm로 작은 크기인데

광배와 연화대좌가 한 몸으로 주조되어 있는

청동상에 두껍게 도금을 하였다.

작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부분은 소라모양의

머리카락인 나발과 정수리 위로 솟은

육계, 그리고 날개처럼 펼쳐진 광배에 새겨진

소용돌이 모양의 불꽃이다.


귀는 타원형의 판을 붙혀서 세부 묘사가 없고

어깨와 가슴도 옷에 가려져 있다.

옷자락은 어깨에서 내려와 계단형으로

펼쳐져 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은 중국 북위시대의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여 박물관의

게시물을 통해 확인해 보니 넓은 광배와

계단식으로 펼쳐진 옷자락, 수인의 모습이

북위의 금동 불상과 유사하였다. 그러나

광배에 새겨진 소용돌이 문양이나, 연화

대좌의 모양이 좀더 섬세하면서도 단정하여

고구려 불상의 개성이 돋보였다.


이 불상외에도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국시대의 금동불상은 광배가 크고 소용돌이

모양의 불꽃이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6세기에 유행하던 금동불상제작 

양식이었던 것 같다.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고구려 불상. 571년 제작으로 추정. 

리움 미술관 소장.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삼국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은 1967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전시 도중 도난 당한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범인이 한강교각 사이에 묻어두고 두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잠적하였는데, 12시간 만에 유물을 다시 찾긴

했지만 범인은 찾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는 이 두 금제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 입상 (국보 80호)과 금제여래 좌상 (국보 79호)


오른쪽의 아미타불은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 성덕왕이 황복사 삼층 석탑에

안치한 것이라 한다. 광배와 얼굴이 훨씬 더 

섬세하게 주조 되었으며, 옷자락이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삼국시대의 불상 주조기술이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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