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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Apr 30. 2021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8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상감청자가 퇴조하면서

나타난 자기로,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

만든 자기이다. 따라서 상감청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기이며

조선 초기에 많이 생산되었다.



분청사기 선각 물고기 무늬편병


상감청자는 13세기 몽골의 침입과

원나라 간섭기가 이어지면서 쇠퇴하였다.

원간섭기의 고려는 권문세족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국가 재정 또한 궁핍하였다. 국력과 문화는

비례한다. 이 시기에 청자의 형태는 무디어지고

빛깔도 탁해졌다. 도공들은 훌륭한 자기를

생산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14세기 후반부터는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다. 정부에서는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안에서 50리 이내에서 살지 말라고 했다.

이때 해안가의 강진, 부안 등의 도자기 가마들이

문을 닫았고 도공들이 내륙으로 피난하면서

청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뿔뿔히 흩어진 도공들은 전국 곳곳에서 다시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제작 여건은 열악했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청자를 구워보면

아름다운 청자의 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상감할 때 쓰던 백토로 전체를 하얗게 칠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선각), 문양을 제외한 부분을

파내거나 (박지), 도장을 새겨서 찍는 방법 (인화)으로

문양을 그려넣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되다 보니 문양의 표현이 서민적이고 자유로워

청자에 비해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분청사기 조화 (선각) 모란 물고기 무늬 장군



분청사기 박지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게 된 가마는 국가가 지원하고

관리하는 관요가 아니라 민요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1424년에서 1432년 사이에

조사된 자기소와 도기소의 위치와 각각의 품질이

기록되어 있는데 백자와 분청사기를 생산한

자기소만해도 139곳이 있다.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자기를 생산하는 곳은 경기도 광주와

경상도에 3곳이 있었다.


이렇게 전국에서 생산된 자기는 국가가 세금의

하나인 공납으로 거두었다. 그래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제작한 곳의 지명을 새겼고,

때로는 장인의 이름을 써넣은 경우도 있다.

또 유실을 막기 위해 해당 관청의

이름을 새겼다. 이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장흥고에서 다른 관청에 그릇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1/5만 돌아옵니다......

앞으로 세금으로 납부하는 그릇에 '장흥고'라고

새기고, 다른 관청에 납부하는 그릇에도 

관청 이름을 새기도록 하여 관청 이름이 있는 

그릇을 사사로이 쓴 자를 벌하도록 해주소서


태종실록 1417년(태종17) 4월 20일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 무늬 자라병



분청사기 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



분청사기 인화무늬접시

분청사기 상감 인화무늬 대접


인화 무늬는 나무로 도장을 만들어 백토위에

계속 찍어나가 균일하고 반복적인 무늬가

나오게 하는 방법으로 무척 단정해 보인다.

이 대접은 그릇 안쪽의 식물 줄기만 상감하고

나머지 부분은 인화기법을 썼다.



분청사기 상감 인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이 항아리에도 상감과 인화기법을 썼다.

용의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왕실에서

쓰던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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