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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May 22. 2021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10

일본 도자기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 전시장 3층에

세계문화관을 새롭게 개관하였다. 

그 중에는 중국, 일본, 서양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어

세계 도자기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각 나라의

개성을 비교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17세기 이전에는 세계에서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뿐이었다.

일본은 상류층이 차를 많이 마셨지만

도자기 생산기술이 없었으므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비싼 값에 도자기를 수입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시기, 수많은 포로들을

끌고 갔는데, 특히 정유재란 때는 도자기 공을

많이 잡아갔다. 그때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

아리타와 가고시마에 도착하였다. 고생스런

포로생활 중, 그들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도자기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들이 일본 도자기의 원조 이삼평, 심수관이다.

심수관은 가고시마현의 사쓰마에서,

이삼평은 사가현의 아리타에서 백자의 재료를

발견하여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쿠타니 자기 (초기 채색자기 1640 - 50)



1640년대 부터 1650년대 무렵부터는

중국의 채색화 기법을 배워 다양한 색상으로

일본만의 개성을 가진 자기를 만들었다.

이후, 금박과 은박도 사용하였다.


이로에 매화무늬 접시



이로에 초충무늬 접시 고쿠타니 양식



금박을 사용한 수염 깍는 접시. 목을 원에 대고 수염을 깍는 지배층의 호사로움이 그려진다.



17세기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중국풍에

열광했는데, 고가의 중국 도자기와 가구를 수집하여

자신의 저택과 정원을 중국풍으로 꾸미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이것을 시누아즈리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궁전을 온통 중국 도자기로

치장한 유럽성의 도자기 방을 3D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감상실을 마련해 놓았다. )


그런데 17세기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건국 (1644)되는 혼란기라 중국 도자기의

수입이 순탄하지 않았다. 이 틈을 비집고 일본이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에도 막부정권은 기독교의 전파를

막기 위해 쇄국정책을 썼지만, 나가사키 항은

열어두고 네덜란드 상인에게만 무역을 허가했다.



나가사키 항과 데지마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인들은 나가사키항 앞의

인공섬인 데지마섬에 상관을 설치하고 

중계무역을 했다. 1659년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56, 700개의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도착했다.

이는 유럽에 일본풍이 유행하게 되는 

자포니즘의 시작이었다.



겐지 이야기 패턴 접시, 유럽인들은 겐지 이야기는 모르지만 접시에 그려진 우아한 일본여성들을 좋아 했다고 한다.



소나무, 대나무, 자두나무가 있는 아리타 자기



아리타 자기 . 수탉과 암탉이 있는 사각접시



고양이가 그려진 아리타 자기


아리타에는 항구가 없었으므로 가장 가까운

이마리 항구에서 출발하였다. 

이런 이유로 유럽인들은 아리타 자기를 

이마리 자기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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