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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Apr 11. 2024

후회 할까봐

고창여행


투병을 한다고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많은 생각이 드나들었다.

그 중,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 순간,  후회하는 일들이 되도록

적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로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세상과 이별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후회되는 일들이 무얼까 되짚어 보았는데

이미  돌아가신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철없던 시절,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고,

결혼해서는 나 살기 바쁘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용돈을 드리지도 못했다. 

아까운 것 없이 그저 퍼주기만하던 엄마의 

사랑을 갚지 못하고, 차겁게 식은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 보며 "엄마 미안해"라고 했었다. 

겨우 한마디 말로...

그래서 엄마에 대한 후회는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내 가슴속에 몇 개의 못이 되어 있다.


그 다음 후회는 딸들을 키우면서 

내 분노를 어린 딸들에게 퍼부었던 것이다.

25년간의 시집살이는 고달펐다.

시어머님의 잔소리가 너무도 참을 수 없었을 때

나의 히스테리는 아이들에게 전가 되었다.

몇몇 장면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대면하여 사과할 용기가 없어서 카톡으로 했다.

착한 아이들은 "엄마는 그런적이 없어

우리에게 최고의 엄마였어"라고 위로 했다.


내게는 올해 85세가 되신 큰오빠가 계시다.

평생 결혼을 안하셨고, 부모님이  세상 떠나실 때 

까지 아무런 불평없이 두 노인을 모시는 일을 

도맡아 하셨다.

게다가 종손이라는 허울 때문에 

일가친척들까지 궂은 일을 의논해 오면 그것 

또한 처리하시느라 동분서주 하셨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오롯이

타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사셨다.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자신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큰오빠에게 세월은 이미 너무 많이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그시간 동안 큰오빠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든든한 큰 어른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60대의 노년기에 들어선 내게 마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백 세를 몇 개월 앞둔

엄마까지 돌아가신 후, 혼자 사시게 된 큰오빠는 

한동안 공황장애로 고생하셨다. 이젠 그림과

서예를 하면서 치유되셨고, 자유로워졌지만 

그렇게 가고 싶은 해외여행은 실행하실 수가 없다.

단 한번도 가족과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오빠에게

가족과의 여행을 추억으로 선물하지 않으면

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을 때 당장하기, 

보고 싶을 때 당장 보기,

이렇게 나의 삶의 방향이 바뀌었으므로

국내 여행이라도 짧게 모시고 가고 싶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했다.


많이 걷지 못하시고 독실한 불교도라는 것을

고려하여, 유서 깊은 절이 있는 곳, 그리고

힘들면 언제나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고창의 상하농원에서 머물고 선운사와

구시포 해변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16차 항암치료가 끝난 후, 의사가 2개월간

쉬자고 했던 1월 19일, 당장 숙소를 예약했고

3월 5일 출발하여 2박 3일의 여행을 했다.


새벽 동틀 때 찍은 상하농원 파머스 빌리지 숙소 외관


불 켜진 곳은 조식 먹는 곳


숙소에서 나오면 바로 있는 양떼 목장


우리 모두 너무나 좋아했던 노천스파


가지수는 많지 않았지만 재료들이 신선하여 전부 맛있었던 조식


아기 염소가 탈출하려하고 있다.

직접 먹이를 줄 수도 있다.


숙소의 탁구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은 삼국시대에 지어진 고찰 선운사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1Km를 걸어 올라 선운사 천왕문에 

다다랐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 보면 

우리나라의 사천왕상에 대한 설명이 수십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 그중 선운사 사천왕상만이 

젊은 여자 (아마도 부정을 저지른) 를 밟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꼭 확인해 보리라  해놓고 남편과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시간을 지체하여 

잊어버렸다.


천왕문


대웅전에서 절하시는 큰오빠


가장 보고 싶었던 동백나무 숲. 그러나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부도탑들이 있는 곳. 추사가 쓴 백파 율사비 포함 19점의 문화재가 있는 곳인데 문이 예뻐서 오래 머물렀다.


선운사에서 힐링 잘하셨다고 무척 좋아하셨다.


선운사에 가면 도솔암마애불을 꼭 보려고 했는데

오빠와 나의 기력이 미치지 못하여 생략하고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구시포 해변으로 갔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 해준이 서래를 찾는 애끓는 장면을 막내가

연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많이 웃었다.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남편은 울컥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시름은 끝이 났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오랫동안 하지 못한

숙제를 마친듯 마음 한 켠이 가벼워졌다.

기력이 없어보여 걱정 되었던 

오빠도 활력이 보여 앞으로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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