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역사적 배경인
카네이션 혁명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20세기 포르투갈에는 무려 40여 년 간 권력을
독점한 살라자르 정권이 있었습니다.
살라자르는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의
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는 미국발 대공황으로 전세계가
심각한 경기 침체에 들어선 때였는데,
살라자르는 임명된지 단 1년 만에 국가예산을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포르투갈 출처 Pixabay
탁월한 능력 덕분에 그는 1932년 총리에
취임했고, 자신이 조직한 국민 통일당의
일당독재를 추진했습니다. 먼저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개헌의 내용은 노조활동금지,
모든 사회활동은 국가가 조정,
집권당인 국민통일당에서만
국회의원을 선출하며, 총리의 해임은
불가능하게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었습니다.
투표결과, 찬성 580,379표, 반대 5,000표,
기권 427,6867표가 나왔는데 살라자르는
기권표를 모두 찬성표로 간주하여
합법적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독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우민화 정책,
즉 3F에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를 했습니다.
3F란 축구 (Futebol), 종교 (Fatima),
음악 (Fado)입니다.
3F를 통해 사람들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 것이죠.
국민들은 정치 대신 축구에 관심을 쏟고,
문제가 있으면 기도를 하고, 슬픔과 분노는
음악으로 해소 했습니다.
포르투갈 출처 Pixabay
교육에 투자하지 않은 결과,
문맹률은 40%에 달했고, 산업은 위축되었습니다.
일부 저항하는 사람들은 비밀 경찰을 동원해
불법구금, 고문등을 자행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식민지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돈을 쏟아부었지요.
36년이 지난 1968년 어느날,
휴가 중 해먹에 누워있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반신불수가 된 살라자르.
그러자 집권세력은 서둘러 살라자르 대신
다른 총리를 세웠고 1970년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정권을 이어갔습니다.
4년이 지난 후,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시민혁명이 일어남으로써 살라자르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세워졌습니다.
이때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독재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군인들의 총구와 제복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습니다.
출처 Pixabay
그래서 이 혁명을카네이션 혁명이라 부릅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