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종분리법
미국 흑인 노예 해방은 1863년 남북 전쟁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마지 못해 노예를 해방 시킨 남부의 여러 주들은
흑인을 옥죄기 위한 인종분리법을 만들었는데 일명 짐 크로법이라고 합니다.
짐 크로 (Jim Crow)는 점프 짐 크로 (Jump Jim Crow) 라는 노래의 주인공인데
절름발이 흑인 노예의 이름입니다.
이 노래는 19세기에 인기리에 공연된 "민스트럴 쇼"에서 불리어 졌는데
백인들이 만든 이 쇼 에서는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서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즉 흑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우월감을 즐긴 것이지요.
그 이후, 짐크로법은 인종 분리법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 되었는데
1876년 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었습니다.
남부의 주들은 식당, 학교, 화장실, 등 모든 공공 시설을 백인용과 흑인용으로
분리했습니다. 심지어 버스에도 백인칸과 흑인 칸을 구분했지요.
또 투표권을 박탈하기 위해, 헌법을 읽고 해석하는 시험을 보거나
라틴어 시험을 보게 하거나, 비누의 거품이 몇개 인지를 물어보기도
했으며 2달러의 인두세를 내게 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흑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 2달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투표를 하러간 사이 흑인의 집을 불태우고 나무에 매달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빌리 홀러데이 라는 흑인 재즈 가수가 부른 Strange Fruit라는
노래는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한 흑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부의 흑인 투표율은 점점 감소하여
미시시피 주의 경우 1900년에 0%가 되었습니다.
투표를 할 수 없으니 흑인의 권리는 더욱 낮아졌습니다.
흑인들이 저항하기 시작했고, 짐크로법을 없애기 위한 민권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성과는, 인종 분리 교육을 없애기 위한 소송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54년 연방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여 교육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 된다는 판결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 위원회 판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이 났다고 해서 흑인학생들이 학교를
마음놓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칸소 주의 경우는 주 지사가 주방위군을 동원하여
흑인학생들을 학교에 못들어 가게 했고
백인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욕을하고 위협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연방군을 보내어 흑인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학교에 갈때, 학교 안에서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학교에 가는 일이 그토록 두려운 일이지만
용기를 내어 계속 학교에 간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1955년, 민권운동은 또하나의 전기를 맞이 했습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 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자
흑백 전용 칸을 없애기 위한 운동으로 번져 갔습니다.
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버스 이용을 거부하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이후 민권운동의 상징이 되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백인들의 온갖 위협에도 꿋꿋이 밀고나간 덕분에
1964년 마침내 민권법이 통과되어
인종을 분리하거나 차별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되었고
흑인들은 투표권을 갖게 되어 짐크로법은 자동 폐지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그러나 2020년, 흑인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사망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백인에게 뿌리깊게 내재 되어 있는 우월감과 타 인종에 대한
멸시가 민권법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민권법은 미국의 흑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낸 결과입니다. 그리나 아직도 차별은 지구촌 전체에
만연합니다. 그러니 흑인들은 자신들이 조롱당하는 사실에
대해 극도로 예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종 차별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없고,
그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예민함이 의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의정부 고등학생들이
흑인분장을 했다가 비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위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했을 뿐
흑인들을 조롱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짐크로법에 대해 알았다면 그런 분장을
하는 것에 대해 좀더 신중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샘 오취리는 흑인 분장에 대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가
한국인들의 비난을 받고 사과했습니다.
사과를 요구한 한국인들이 흑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알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그러한 일은
없었을것입니다.
입장은 상대적인 것이라 우리도 어느 곳에서는
약자이며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약자의 입장을 헤아리며 배려하는 사회는
좀더 따뜻한 세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