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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Aug 29. 2020

로봇 눈치보기


돈에 대한 욕망를 표현하는 것은

 점잖치 못하다고 배워왔다.

조선의 양반들은 직업을 

사농공상으로 차등을 두고

상업은 양반이 할 짓이 못된다고 했다.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 사실과는 

다른 과장을 해야할 테니

그것은 유교적 도덕관념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김득신 '반상도'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을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크리스트교를 믿는

유럽인들은 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죄악시 했다. 따라서 고리대금업은

유대인들이 했다.


부에 대한 욕구를 겉으로나마 억제하는 것은

어느정도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깔려

있었던 것이고 사회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구휼제도가 있었어도

섬세하지 못했고 잘 집행되지 못했을테니까.

때로 도덕심을 바탕으로한 자발적인 배려는

사회 갈등을 완화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었을 뿐,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 본성 때문에 몇 번에 걸친 기술 혁명을

이루었고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술혁명은 4차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그런데 코로나 19는 그 시대로 우리를 성큼

데려다 주었다. 그곳에서 문을 열어보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 속에서 모두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부에 대한 욕구와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부의 창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세계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인터넷의 가상 공간에서

부를 창출하기 위한 갖가지 활동을 한다.



출처 Pixabay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인터넷 공간에 발을

들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글이

로봇에 의해 누락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떻게하면 로봇의 안테나에 걸리지 않을까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다.


나도 내 글이 누락되지 않았나 찾아 보았다.

내 글 세개에 빨간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순간, 뭐가 잘못된거지...당황스럽다.

그 세 개의 글은 온전히 내 글과 사진으로

채워진 것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이 그랬다면 전화를 걸어 따질 생각을

했을텐데 로봇한테 따질수는 없지 않은가

"멍청한 로봇!" 하고 체념하는 수 밖에.

원인을 따져보기에는 내 소중한 시간과

열정이 낭비될 것같다.


어느덧 우리가 로봇의 눈치를보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매트릭스가 생각나서 다시 보았다.

영화에서는 2199년 고도로 발달한 기계

로봇이 1999년도 라는 허상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인간들을 배양하여 각자 프로그램화 시킨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정확한 규칙의 프로그램

속에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는데 그것은 정말로 맛있는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 시스템에서 맛있다고

조종하기 때문에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매트릭스에 갇히는 세상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유한한 인생, 살아있는 동안 부를 추구하되,

로봇에게 지배당하진 않도록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를 구하러 올네오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니까 스스로 네오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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