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동로마 제국은
1,000년간 더 이어져갔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동로마 제국을 비잔티움제국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옛이름이 비잔티움이기도 하고, 옛 로마 제국과는 달리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으며, 그리스 사상과 학문이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가장 유명한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재위 527 -565)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의 로마법을 집대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한 일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장군 벨리사리우스를 사령관으로
보내 게르만족에게 빼앗긴 땅을 거의 회복합니다.
즉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와 이탈리아반도까지
비잔티움 제국 최대의 영토를 확보한 것이지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라벤나 성당의 모자이크 출처 위키미디어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 테오도라는 황제 못지 않게
유명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곰조련사 였습니다.
그는 어린 딸들을 남기고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어린 딸들을 무대위에
올렸습니다. 겨우 7살 때 부터 테오도라는 무대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무언극을 했는데, 총명한데다
아름다운 미모까지 더해져서 그녀가 나올 때 마다
갈채가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천박한 매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고, 많은 남자들을 유혹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추문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양털을 자아 생계를 유지하며,
조용히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직 황제가 되기 전이었던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녀를 아내로 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비천한 신분이라 어머니와 아내가 강력히
반대를 하였지요. 결국 어머니와 아내가 죽은 뒤,
법률을 고쳐서 테오도라와 결혼식을 합니다.
그리고 삼촌이었던 황제 유스티누스로부터 황제직을
물려받았고 테오도라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녀를 자신과 대등한 공동 통치자로
선포했습니다. 황제는 모든 국사를 황후와 의논했고
그가 포고한 법률의 대부분은 테오도라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테오도라황후 라벤나 성당의 모자이크 출처 위키미디어
가장 유명한 일화는 니카의 반란때 입니다.
전차경기가 열린 대 경기장에서 흥분한 관중이 폭도로
변하여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달아나려는 황제에게 황후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왕의 자리에 있는 자가
권력과 위엄을 잃으면서까지
목숨을 연장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설령 단 하루라도 왕관을 벗고 황후의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여주거나
황후로서의 인사도 받지 못한다면,
삶은 저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저는 왕좌야말로 영광스러운 무덤이라는
고대의 격언을
지키겠습니다.
출처 로마제국 쇠망사 Edward Gibbon
이 말을 들은 황제는 잃었던 전의를 다시 불태우며
반란을 진압했는데, 3000명이 넘는 군중을 경기장안에
가두고 무차별 살육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불타버린 수도를 재건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성소피아 사원도 재건축했습니다.
10000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하여 5년 10개월만에
완공된 이 성당은 돔지붕에,
내부는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했습니다.
지금 터키는 성소피아사원을
모스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소피아 사원 출처 픽사베이
성소피아 사원 내부 출처 픽사베이
성소피아사원의 모자이크 출처 픽사베이
테오도라는 황후가 된지 22년 만에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비탄에 잠긴 황제는 지나치게 종교문제에
집착하고 유능했던 장군 벨리사리우스를 시기질투하여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최대의 영토를 자랑했던
비잔티움 제국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비잔티움제국 출처 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