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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Sep 27. 2020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다큐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싶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훌륭한 넷플릭스 다큐이다.



이 다큐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FACE BOOK,

INSTAGRAM, GOOGLE, TWITTER,

YOUTUBE, SNAPCHAT 등

소셜미디어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좋아요" 버튼을 만든 사람, 구글의 알림설정을

만든 사람도 있다. 그들의 활동이 헤어진 가족을

찾게도 했고 장기기증자를 찾게도 했다.

그들은 그것이 선을 위한 힘이라고 믿었고

의미있는 시스템의 변화가 플랫폼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었다.

"좋아요"를 누르면 선한 영향력이 퍼져 갈 것 같았다.

그런데 "좋아요"를 받지 못한 한 10대가 

우울해 진다면? 

소외감과 좌절감이 쌓여서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면?


이제 그들은 우리의 정신건강과 소셜미디어와의

관계를 말하며 이것이 정상인지 자문해야한다고 말한다.



유튜브를 열었는데 내가 궁금했던 주제를 담은

영상이 뜬다. 바로 이거야, 유튜브는 정말 똑똑해.

그러나 그 이면에 느껴지는 섬뜩함.

내가 이것을 궁금해 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내 머리속의 궁금증, 취향까지 다 파악하고 있는

알고리즘.

내가 "좋아요"를 눌렀던 것, 내가 보았던 영상들이

나에 대한 정확한 데이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영상이 내 감정과 호기심을 자극할

것인지 알고리즘은 알아서 영상을 제시한다.

그러면 나는 유튜브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좀 더 많은 광고를 보게된다. 

나는 그 모든 영상을 공짜로 보는데 

비용은 광고주들이 지불하고 IT기업이 돈을 번다. 

결국 IT기업은 나의 정보를 가지고 돈을 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고객이라하지 않고

사용자라고 칭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라는 말은 충격이다.


"기업이 성공을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다. 이윤을 위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인지 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셜미디어가 우리사회와 정치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가 자신의 플랫폼에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 경쟁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오랫동안 떠들어대는 것이 중요하다. 

가짜 뉴스의 생산과 확산. 그것은 결국

IT기업의 이익이 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믿고 싶은 영상들을 클릭한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그 사람이 보고싶은 영상과 기사들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는 것이 곧 진실이며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믿는다. 가짜뉴스가 넘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퍼져가면서 그룹을 형성한다.

선전과 구호가 넘쳐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허위정보의 시대인 지금, 그 어느때 보다도

심하게 우파와 좌파로 분극화 되어가고 있다.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분쟁들이 허위정보들

때문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IS의 중동장악,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개입한 일등.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얀마에서 일어난 로힝야족 학살 사건이

페이스북 때문이었다라는 사실이다.

미얀마에서는 휴대폰을 사면 페이스북을

깔아주는데 그곳에서 전파된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로힝야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로힝야족 출처 위키피디아



SNS와 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적어도 우리가 어떤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는 지를 알아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것의 잇점은 취하되 이용 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다큐의 출연자들이 제시한 해법 대로

이 메트릭스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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