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24
사람 24
살아 보니 모든 건 ‘순간’이었다. 순간보다도 더 짧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삶이라고 해도 되겠다. 죽을 때 품고 갈 사무치는 사랑도, 사랑했던 이름도, 결국은 순간 저장된 것일 뿐, 그것이 지속적인 진행형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삶이란 그런 거다! 이 순간을 저 순간이 덮고, 그래서 저 순간이 또 이 순간이 되고... 그렇게 순간이 순간을 덮으며 나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기가 막히는 어떤 상황도 어떤 순간도 곧 또 다른 순간이 와 덮을 것이고. 다른 색깔로 채색되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절망도 희망도 외로움과 두려움까지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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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별은, 더구나 죽음으로 맞이한 이별도 그럴까? 이별도 또 다른 어떤 순간이 와서 그 아픔을 덮고, 슬픔을 덮어 다른 곳으로 보내줄까? 아니, 이별을 덮을 만한 거대한 순간이 있기는 한 걸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시간은 모든 걸 덮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십여 년을 혈관성 치매를 앓다가 삼 년 전부터 노인성 치매까지 보태져 입원하신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정말 치매 중에서도 가장 심한 상태였다. 대소변을 못 가리고 가족도 못 알아보는 것은 물론, 자기가 사람인지 짐승인지조차도 모를 만큼 이상한 괴성을 하루 종일 질러댔다.
한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 짐승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저리를 쳤다. 병아리가 삐약삐약 하며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가, 덩치 큰 불독이 으르렁거리며 성난 무엇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휘영청 달 밝은 밤 산꼭대기에서 우는 기괴한 늑대 울음 같기도 하다가, 심장을 파먹을 것 같은 밤 부엉이처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기도 하다가...
“저 방은 정말 짐승 우리 같아. 다른 어르신들 아무리 씻고 닦이면 뭐해? 한 사람이 내는 냄새에 금방 다 옮는데.”
누군가가 한 말이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 말이었다. 병원 규칙상 모든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요양보호사들이 병실 순번대로 목욕을 시킨다. 거기다 중환자 병동인 우리 병동은 하루 두 번씩 조무사들이 환자들의 눈과 구강, 손과 성기를 닦이고 소독한다. 그래서 병원 특유의 소독 냄새와 늙은 환자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냄새 외에는 나름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 정옥순 할머니만은 어쩔 도리가 없다. 몸무게 48킬로의 여윈 몸이지만 온갖 짐승이 다 들어앉은 그녀를 제어할 힘은 아무도 갖고 있지 못했다. 아무리 사지를 튼튼하게 묶어도 어디서 그런 힘을 내는지 침대는 막무가내로 흔들렸고, 마침내 묶은 끈이 찢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한쪽 팔이 풀리자마자 옥순 할머니의 손은 번개보다도 빠르게 곁에 있는 요양보호사 머리채를 휘어 감았고 놔주지 않았다.
“못해요. 못하겠어요. 내가 이 나이에 저런 짐승 같은 것한테 이 무슨 꼴이에요?”
목욕실에서 나온 요양보호사는 거의 울면서 소리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모두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사람을, 그것도 일흔이 넘은 노인을 벗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누칠도 채 덜 된 옥순 할머니를 다시 또 옷을 입히기 위해 누군가는 손을 할퀴었고, 누군가는 그녀의 발길에 가슴이며 팔을 채여야 했다.
옥순 할머니 방은 덜 벗겨진 체취와 덜 마른 물 냄새, 욕설과 깨물림으로 방치돼 온 시간이 보태져 정말, ‘짐승 우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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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갈하기가 매일 삶아 빤 행주보다도 더 했고, 얌전하기는 숨도 안 쉬는 사람 같았어요. 혈관성 치매를 오래 앓았지만 욕은 물론 이상한 고집 한번 부려본 적 없었고요. 그런데 삼 년 전에 한 해에 세 사람이 엄마 곁을 떠났어요. 죽었죠.”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의 전원을 요구하는 간호사에게 할머니의 딸이 거의 비는 모습으로 울먹였다.
“외할머니, 이모, 그리고 저희 아버지요. 그때부터 저러더라고요. 죽음이 뭔지 아는 듯 울기만 하시더니 어느 날부터 갑자기 저래요. 사람들이 데려갔다는 거예요. 그러니 빨리 도로 데려다 놓으라는 거예요. 죽었다고, 그래서 다시는 데려올 수 없다고, 영원히 이별한 거라고 하니까 ‘영원’이란 말하지 말라고 소리치시더니, 그때부터 사람 소리를 내지 않더라고요.”
간호사의 난감한 표정이 슬픈 표정으로 바뀐다.
“할머니가 그렇게 덤비듯 몰아닥친 이별을 겪으셨군요.”
요양병원이란 정거장, 세상에서 유일하게 ‘납득’ 안 되는 어떤 것도 없는 곳! 처음의 비난도 동조로 물들고, 처음의 놀람도 익숙한 이해가 되는 곳! 거부도 거절도 무력해지고 마침내 안고 가는 요람 같은 곳! 요양병원...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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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별이란, 죽어서 이별한다는 것이란, 다른 어떤 순간이 덮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이별이란 슬픈 것이구나... 영원해서 슬픈 것이구나...
사람들이 데려갔다고 믿는 어머니와 언니와 남편을 찾는 옥순 할머니가 오늘도 울고 있다. 짐승의 목소리로!
이별은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고, 덮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