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25
사람 25
그것이 그 말 같다. 바로 보아도, 뒤집어 놓고 보아도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말한다.
“납득이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어? 그냥 이해하는 거지. 부모가 이해 안 하면 그게 부모야? 남이지.”
“부모는, 무조건 이해를 해야 돼. 그게 삐끗거리면, 이해가 안 되어 재차 묻거나 이해를 시켜 달라고 요구하면, 그땐 부모 자식 간은 사달 나는 거야.”
“우리는 어디 우리 부모들한테 안 그랬나? 말이 안 통하거나 내 의사를 안 받아들이면, 답답해하면서 소리도 높이고... 휴, 내가 그랬었네...”
“말해 뭐 해? 그런 자식 기세에 눌려 우리 어머니는 갑자기 다 이해를 한 사람처럼 웃고, 다른 말로 돌리고, 그럼 나는 내 말이 먹혔나 보다 하고 속 편해졌지. 내가 특별히 나쁜 놈이었겠어? 자식이니까 그랬지.”
“납득, 이해,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인간이 부모가 되고 거기다 늙고 힘없어지면, 밥보다도 더 챙겨야 하는 게 자식에 대한 이해야. 부모가 이해를 해야 그나마 부모 자리를 내주는 게 자식이란 말이야. 내가 그랬거든.”
©픽사베이
“그게 어디 자식들 잘못인가? 우리 자식들만 뭐 유별나게 못 돼먹어서 그래? 아니지. 배운 거지. 우리가 우리 부모한테 그랬으니까 그걸 보고 배운 거란 말이지.”
“그러니 서운할 것도, 분해할 것도 없어. 억울할 것은 더더욱 없고. 우리 부모도 그렇게 살다가 가셨고, 우리도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자식에 대한 이해가 결국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더라고. 그게 순리더라고. 왜 내리사랑은 있지만 치사랑은 없다고 하는지 늙어보니 알겠더라고. 부모가 자식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지만, 자식이 부모에 대한 마음은 엄격히 말해 사랑이 아니야. 의존이고 정이고 도리지.”
구 층 병원 휴게실에서 재활 치료를 마친 어르신들이 각자의 휠체어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증세가 가장 경미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뇌출혈 등으로 쓰러졌지만 재활을 통해 호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척추 수술이나 고관절 수술로 하반신을 거의 못 쓰지만 열심히 재활하면 독립 보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은 사람들, 의식이 오락가락하지만 대부분은 사리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입원 병동에 자리가 없어 자리가 날 때까지 임시로 중환자 병동에 입원한 김 동진 할아버지를 모시고 재활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재활 병동 한편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자 할아버지는 휠체어 바퀴를 그쪽으로 돌렸다.
“재미있게들 담소 나누시네요.”
뒤늦게 끼어드는 게 미안한지 김동진 할아버지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시오. 우리 모두 부모 연습하는 중입니다. 아니 가신 부모들한테 속죄하는 중이라는 게 더 맞지요. 허허허”
“내가 부모한테 답답해하며 왜 이해 못하냐고 대들었던 걸 이제 내가 겪고 보니, 우리 자식들도 얼마나 내가 답답할까... 무진장 이해가 된다는, 뭐 그런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고개만 끄덕거릴 뿐, 말이 없던 김동진 할아버지가 노인들을 훑어보았다. 차분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흔한 말이지만 세대가 달라서지요. 우리가 우리 부모들이 산 세상을 안 살아봤듯이, 우리 자식들도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모르니까요. 그 세상엔 그 세상의 법이 있고 도리가 있고 또 의무와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안 살아봤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해할 밖에요.”
“......”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산 사람이니까 이해를 해 주는 게 맞지요. 부모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안 살아본 세상을 살아온 어른으로서 말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이해를 못한다는 건, 나이 먹은 것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식으로선 아직 안 살아본 나이를 사는 미지의 시간을 사는 사람 아닙니까? 자식은 부모가 이미 살아왔던 나이를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경험자가 무경험자를 이해하고 납득해야 되는 건 마땅하지요. 서운해하실 것 없어요.”
“......”
“납득, 이해, 그런 걸 따지는 건 동시대의 동년배들에게서나 소용되는 감정입니다. 자, 각자 병실로 가십시다. 이 시간에도 우리 자식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납득과 이해로 우리를 대하려고 골머리를 싸매고 애쓸 것입니다. 안 살아본 미지의 시간에 살고 있는 부모 심중을 헤아리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과거에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구 층에서 사 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김동진 할아버지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픽사베이
마음이 아주 펑화로웠다. 요양병원은 <시청각 도서관>이다. 좀 더 다녀야겠어! 내 근무 기간이 또 늘어났다.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