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26
사람 26
그만 다녀야 해! 마음과 몸이 철끈에 묶인 것처럼 따갑고 아팠던 적이 있다.
요양병원에 출근하면서 늘 어디 한쪽이 아프고, 가슴은 숨도 걸릴 만큼 뻑뻑해져, 하루도 편안한 적은 사실 없었다. 아픈 사람, 그것도 치유 가능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함께 있는 것은 나로선 그만큼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말기 암의 통증으로 자면서조차 자지러지는 고함을 치는 사람,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치매 환자의 괴성과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눈빛, 피돌기마저 멈춰버린 고목처럼 굳고 뒤틀린 몸, 아내를 간병하다 먼저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 혹은 그 반대의 경우...
“환자마다의 사연을 생각하면 요양병원 근무는 절대 못해. 그냥 소설 읽는다 생각해. 영화 본다 생각하라고.”
삼 년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참 많이도 들어온 말이다. 선배는 물론이고 나보다 뒤에 입사한 후배도 입에 배인 것처럼 그 말들을 했었다. 반복 주입되는 교육의 효과는 컸다. 어느 사이 나는 납득은 안 되지만, ‘소설’과 ‘영화’처럼 병원 풍경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삶’이란 것은 전 세계 인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내밀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대입시켜도 설명되지 않는 것!'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와 같은 명제에 가까스로 흔들리는 나를 붙잡을 수 있었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도, 병에 대한 환멸도,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처절함도, 그래서 조금은 무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열이란 열은 다 빠져나가는 머리를 이고도 펄펄 타오르는 숯덩이를 문 것 같은 입술로 나는 울었다. 병원에선 울면 안 되지만 울어야 나는 그 순간 숨을 쉴 수 있었다.
©픽사베이
시말서든 사표든 쓰라면 쓰리라! 마지막 카드를 손에 쥔 사람처럼 나는 비장해졌다. 그리고 명혜 씨를 안았다. 안고 명혜 씨와 함께 울었다.
“제발, 제발, 엄마 죽어. 그만 죽어 달라고, 그렇게 고생하며 산 것도 모자라 딸 죽는 것까지 보려고 해? 오늘이라도 당장 죽으란 말이야. 나 없으면 누가 바보 된 엄마하고 눈이라도 맞춰 주는데? 나 없으면 누가 엄마 죽을 때 울어주는데? 나 없으면 누가 엄마 송장 치워 주는데?”
절규였다. 절규라고 하면서도 이건 아니다. 아닌 줄 안다.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치매로 해죽해죽 웃고 있는 늙은 엄마, 그 엄마의 가슴을 치며 죽으라고 울부짖는 딸, 그 딸의 핏내 나는 저 고함과 저 눈물을 도대체 뭐라고 말할 수 있나.
“번질 데는 다 번졌대요... 우리 엄마는 언제쯤 죽을까요?”
한 달 전 명혜 씨가 한 말이다. 유방암 말기, 그녀의 말처럼 온몸에 안 번진 데가 없을 정도로 암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자리를 틀었다.
“길어야 오 개월이라는데... 그 안에 우리 엄마 죽을 수 있을까요? 저보다 먼저 가야 해요. 우리 엄마는요. 절대로, 절대로, 그 순서 잘못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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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 씨는 어머니 치매 수발을 들었던 무남독녀 외딸이었다. 십 년이었다. 그 사이 남편 하고는 이혼은 안 했지만 남보다도 못하게 멀어졌다. 두 아들도 외할머니 라면 치를 떨었다.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씹어 먹은 사람! 아들은 외할머니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부모라면 저 정도 되면 죽어줄 줄도 알아야지! 아들 옆에서 남편이 했던 말이라고 했다.
“화나지 않았어요. 그냥 듣고만 있었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우리 엄마가 아직 살아 있고, 그냥 웃든 날보고 웃든 저렇게 웃어주니까요. 그런데 이제 화가 나요. 내가 죽게 되니 나보다 오래 살면 어떡하지? 겁이 나요. 우리 엄마 좀 죽게 해 줄 순 없나요?”
사람이 얼마나 더 불쌍해질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질 수 있는 십자가 무게는 얼마나 돼야 내려질 수 있을까?
병원에 올 때마다 엄마를 길게 부르며 환하게 웃던 명혜 씨가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그 엄마를 죽으라고 소리친다. 왜 안 죽고 있냐고 어깨를 잡아 흔들고, 딸이 죽는다니 그렇게 신나냐고 팔을 물어뜯는다.
“나 죽는 거 보는 게 소원이야? 그래? 엄만 지금 딸 죽는 거 보려고 그렇게 살아 있는 거야? 해준 게 없어서 나 죽는 거라도 봐주려고?”
“이 아줌마가 왜 이래? 우리 딸 오면 가만 둘 줄 알아?”
명혜 씨의 어머니가 시트를 던진다. 시트를 뒤집어쓴 명혜 씨를 내가 안는다. 기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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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도, 바라는 게 분명할 때만 할 수 있다는 걸! 아무것도 바랄 수 없고, 바랄 수 있는 무엇도 없던 그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모녀를 보았다.
“엄마, 제발 이렇게 빌게. 나 먼저 죽어! 지금 좀 죽어주라. 그럼 내가 엄마 있는 곳에 꽃 들고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잖아?”
정말, 펑펑 울었다. 말리는 사람도, 꾸중하는 사람도 없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