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1
사람 31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침대 시트를 온몸에 칭칭 감은 704호 금숙 할머니가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창자까지 다 쏟을 만큼 있는 기력을 다해 소리치며 운다. 본인의 두 팔과 두 다리로 감은 침대 시트가 마구잡이로 꺾인 철사처럼 할머니 몸을 파고들고 있다.
병원 내 인사이동으로 재활 병동인 7, 8층으로 이동된 첫날, 나는 그렇게 금숙 할머니를 만났다.
©픽사베이
이년 여 정들었던 중환자 병동을 떠나 같은 병원이라고는 해도 환자도 직원들도 낯선 재활병동으로 출근하던 날은, 신입처럼 모든 게 생소했다. 생소한 만큼 온기가 사라진 내 마음이 무거웠다. 재활병동은 치매나 암, 뇌혈관 질환 등 병력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운신이 가능한 분으로서 웬만한 의사소통도 되는 분들이 모여 있는 병동이다. 그래서 우선 시끄럽다.
환자 간 다툼도 많고, 그것을 저지라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그만큼 높고 세다. 시끄러운 것을 병적일 만큼 싫어하고 못 견뎌하는 내 성격으론 최악의 인사이동이었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만 발자국을 따라 줄기차게 따라온 출근길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재활병동은 요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아 조용하다 못해 무덤 같던 4층 중환자 병동을 지나자 말소리와 고함과 울음이 뒤섞인 온갖 소리들이 엘리베이터 안까지 들려왔다. 나는 병동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기력과 혼이 빠진 모습으로 ‘오늘이 퇴사 일’이라는 슬로건을 가슴에 새겼다.
아침에 인계를 받은 후 첫 라운딩을 하면서 본 금숙 할머니는 깡말랐지만 품위를 잃지 않은 눈빛을 가진 분이었다.
“저렇게 보여도 치매가 심해요. 고집은 또 얼마나 세다고요. 아무도 못 당한다니까요.”
인계 때 홍 조무사가 고개를 흔들며 한 말을 들어서 일까? 거의 발악하듯 온몸을 시트로 칭칭 감고 울부짖고 있는 금숙 할머니의 눈빛에서 서슬 퍼런 저항이 그대로 읽혔다.
저러다 숨넘어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될 만큼 금숙 할머니는 일 초도 쉬지 않고 같은 말을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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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우린 들 이러고 싶어서 그래요? 운신도 힘든 분이 이동 변기를 고집해 침대 옆에 놓아드렸는데, 거기에 내려와 앉다가 왜 앞으로 고꾸라져 입술을 깨냐고요. 이 피 좀 봐요. 어르신은 병 때문에 지혈도 잘 안 되는데, 이러다 뭔 일 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무릎이 꺾여 퉁퉁 부은 적이 없나,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옷이 끼여 나동그라지질 않나, 아들이 와서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한테 책임을 물을 거 아니에요?”
손에 기저귀를 들고 금숙 할머니 침대 옆에 서서 요양보호사들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기저귀를 차면 편하고 좋지 뭘 그래요.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알아서 때 되면 갈아줄 텐데, 왜 굳이 남들 안 하는 변기를 고집하시냐고요. 봐요. 화장실까지 부축해서라도 갈 수 있으면 몰라도 어르신은 그것도 안 되잖아요. 일인실도 아닌데 어르신 변기 때문에 그 방에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알아요? 좁아터진 병실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은 또 어떻고요.”
금숙 할머니는 어깨 부분의 시트를 잡아당겨 자신의 목을 감았다. 다리에 감겨 있던 시트를 풀어 바지를 벗겨 내려던 요양보호사가 기겁을 하며 할머니를 붙잡았다. 그 사이 다른 요양보호사는 있는 힘을 다해 오므리고 있는 할머니의 다리를 벌리고 바지를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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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숙 할머니가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아랫도리가 환하게 드러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감고 안 보는 게 할머니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다. 그건 나 자신에 대한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이었다. 할머니의 울음이 더 크고 더 길게 병동을 울렸다.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 기저귀를 차는 거예요. 짐승이면 몸에 칠갑을 하든 말든, 그대로 두죠. 사람이니까 똥오줌 받아내는 기저귀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제발, 고집 그만 부리세요. 아무리 치매지만 이렇게 우기기만 해서 될 일이냐고요. 또 오므린다. 웬 힘이 이렇게 세요? 다리 벌려요. 제발. 남들 다 차는 기저귀 왜 어르신만 이렇게 별스럽게 거부해요? 그 연세에 숨기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다고. ”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기저귀를 채우고 나오는 요양보호사를 나는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자 자신의 아군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요양보호사는 금숙 할머니의 병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질려요, 정말 저 할머니한텐 질려. 지금 몇 번째 기저귀 소동인가 몰라요. 기저귀만 차자고 하면 죽여 달라고 저렇게 날뛰니 온몸에 땀 한 방울 남는 것도 없이 있는 맥, 없는 맥이 다 빠진다니까요. 남들 다 차는 기저귀가 저 어르신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몰라. 똥이고 오줌이고 싸면 다 알아서 닦아주고 갈아주는데.”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다니, 당신이 저 할머니라면 순순히 기저귀를 차겠는가... 환한 불빛 아래에서 아랫도리가 벗겨져 음부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똥이며 오줌을 보여주는 일이, 당신이라면 늙고 병들었으니 부끄럽지 않겠는가. 당신들 스케줄대로 기저귀 케어 시간이 따로 있어, 그 사이 변을 보아도 척척한 채로 당신들이 기저귀 갈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당신 같으면 그런 자신이 죽고 싶지 않겠는가. 짐승 같다고 느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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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때 탈의실에서 간호복을 입고 벗을 때도 동료 한 사람만 같이 있어도 나는 불편했다. 간호복이 바지라 바지를 입고 간 날은 다시 간호 바지로 갈아입으려면 부득이 팬티 아래로 두 다리가 보여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동료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보는 것은 나로선 도무지 편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근무 기간 내내 남들보다 출근을 이십 분 정도 빨리 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병실을 돌고 있는데 다시 요양보호사들이 우르르 금숙 할머니의 병실로 뛰어가는 게 보인다.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고함을 내지른다.
“어르신, 기저귀를 이렇게 죄다 빼서 찢어놓으면 어떡해요? 선생님, 어떻게 주사를 놓든 약을 먹이든 이분 좀 진정시켜 주세요. 기저귀를 실처럼 갈기갈기 다 찢어놨다고요. 치매 걸린 노인이 어떻게 기저귀 찬 건 안 잊어버리는지 몰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