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Termin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 서석화 Apr 25. 2019

당신은, 당신에게, 화를 내는 겁니다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2

사람 32     

                   

          당신은, 당신에게, 화를내는 겁니다   



또, 맞았다.      

반팔 간호복 아래로 드러난 왼쪽 팔뚝에 벌겋게 자리 잡은 손바닥 자국이 보인다.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석션을 할 때마다 거칠게 휘저으며 무자비로 때리고 할퀴는 최명동 씨. 후두암과 뇌출혈로 목소리도 거동도 잃었지만 의식만은 너무도 명료한 육십일 세의 젊은 환자다. 잘 때도 벗지 않는 안경 아래로 짙은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 얼마나 건장한 체격이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큰 키와 균형 잡힌 몸, 서슬 퍼런 눈빛의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 팔로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      


팔꿈치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퍼지고 있는 멍도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가 끼고 있는 반지에 긁혀 팔뚝에 조약돌 같은 핏방울이 십여 센티나 돋아난다. 따갑고 저릿저릿하다. 솔직히 욕도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석션을 멈출 수는 없다. 가슴에서부터 그렁거리며 입 밖으로 품어 나오는 가래를 뽑아주지 않으면 금방 또 산소포화도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휘저으며 때리고 할퀴던 그가 몸을 피하자 머리맡에 있던 티슈 통이랑 물병을 던진다. 석션 기를 끄지도 못한 채 양손으로 석션 라인과 석션팁을 들고 있던 나는 또 대책 없이 티슈 통이랑 물병을 또 맞는다.      


©픽사베이



기어이 목소리가 분노로 떨리며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싸늘해진다.      


“최명동 님, 자꾸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이렇게 폭력을 쓰시면 어떡해요? 저흰 최명동 님을 도와드리려는 사람들이잖아요?”      


무슨 대답을 들을 수 있겠는가. 목소리를 잃은 그에게서 무슨 사과의 말을 듣겠다고,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나. 어쩔 수 없는 자책이 또 몰려온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어 걸음 떨어져 있던 발자국을 그의 앞으로 옮겨 다가간다.     


“석션, 힘드시죠? 알아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해야 해요. 이거 안 하면 최명동 님이 더 힘들어져서 안돼요. 그건 아시잖아요?”     


그가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든다.      


“할게요. 조금만, 입구에 있는 것만 제거하고 그만 할게요. 깊게는 안 할게요. 잠시만 참아주세요. 네?”     


계속 켜져 있던 석션 기의 굉음 속에 조심스럽게 최명동 씨의 목에 있는 T 튜브 속으로 팁을 밀어 넣는 순간이었다. 잠시 수그러들었다고 믿었던 최명동 씨의 오른손이 정말 번개보다도 빠르게 내 왼쪽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손목이 바스러질 것 같았다.      


“아, 진짜! 그만 좀, 하라고요. 이 팔의 멍이며 상처, 안 보이세요? 이거 최명동 님이 때리고 할퀸 거잖아요?”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지며 신경질이 잔뜩 묻은 몸짓으로 석션 기를 꺼버리고 병실을 나왔다. 모욕을 당한 것처럼 심장이 떨리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내뱉지는 못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욕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랬다.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나면 어떻게든 진정이 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으니 숨까지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러게, 묶고 하랬잖아요. 저분은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몸이 남아나질 않아요. 기저귀 갈 때도 어찌나 팔로 머리를 쥐어뜯는지, 우린 아예 묶고 시작해요. 보호자들도 동의한 건데 왜 석션할 때마다 그 지경을 당해요? 아유, 샘. 저 팔 좀 봐. 부풀어 오르네.”


지나가던 요양보호사가 묶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 병실 저 병실에서 기저귀를 갈고 나오던 다른 요양보호사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픽사베이


“저 양반들은 여기가 병원인 줄도 모르나 봐.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똥 기저귀 갈아주며 무조건 예, 예, 해 주니까 본인 신세도 모르는 건지, 가족들한테도 못 부리는 온갖 포악질을 우리한테 다 한다니까요? 최명동 저 양반도 자기 부인이랑 딸들 앞에서는 얼마나 고분고분한데요.”     


“글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떤 할머니는 우리 보고 어떤 말까지 했는지 아세요? 야, 이년들아. 우리가 병이 들어 여기 왔으니 니들이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라도 하며 벌어먹고 사는 거야. 네년들이 뭐 공짜로 씻기고 먹여 주냐? 돈 받아 처먹으며 그럼 양반 대접받으려고 했어?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덤벼들어 확, 쥐어뜯고 싶더라니까요?”     


“차라리 최명동 님처럼 때리고 할퀴는 건 아프고 괴로워서 그러나 보다 할 수 있어요. 기저귀를 갈려고 앞을 펼치면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끌어 거시기에 대는 노인네도 얼마나 많은데요. 정말 그럴 때면 썩은 무 뽑듯이 확, 뽑아 던져버리고 싶다고요.”     


“그래, 정말 그럴 때마다 내가 뭐 호의호식하겠다고 남의 할아버지 밑 닦아주며 이 일을 당하나 하는 회의가 왕창 밀려와요. 솔직히 돈도 돈이지만 우리 하는 일이 봉사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 아니에요? 많지도 않은 요만큼 돈 벌려면 어디 가서 뭘 한들 못 벌겠어요? 같은 돈이지만 좋은 일하며 벌어보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억장이 무너질 때가 너무 많아요.”     


“고마운 줄은커녕 하녀보다도 못하게 여기니까 나는 애초에 가졌던 봉사심도 다 사라졌어요. 그래, 당신들은 내 돈줄이다. 당신들이 날 하녀로 생각하면 나 역시 당신들을 내 돈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욕 한 번에 얼마, 능글맞은 손짓 한 번에 또 얼마, 얻어맞으면  곱하기 2, 에고... 어느 사이 이렇게 타락하더라고요. 그러니 이제 묶고 하세요. 샘은 왜 그렇게 묶는 걸 싫어하세요? 그러다 맞으면 누가 알아줘요?"     



종이컵에서 스틱 커피가 고스란히 식어갔다. 아마 나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된 때문일 것이다. 벌벌 떨리는 가슴으로 커피를 타긴 탔는데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사람들의 말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솔직히 응원가처럼 느껴졌다. 드러내지 못한 내 분노를 대신 표출해주고 있는 그들이 끈끈한 우애로 뭉쳐진 아군처럼도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욕에 동조를 해 주고 동참을 해 주는 그들에게서 따뜻한 정도 느껴졌다. 그러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딱딱하게 굳었고, 더 캄캄했다.      


이런 대접받으려고 이 일을 시작했나... 언젠가부터 근무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자괴감과 후회가 다시 덮쳐왔다. 이런 종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으려고... 그때였다. 나는 내가 되뇌고 있는 ‘대접’이란 단어 앞에서 나도 모르게 멍든 팔을 감싸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접이라니... 아픈 저들로부터 지금 뭘 바라고 있나... 드러낼 수는 없지만 가족들로부터도 이미 부담과 불편한 존재가 된 저들이 아닌가. 이곳에 들어와 죽음의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저들에게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배웅자가 되겠다고 시작한 조무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내가, 그랬던 내가, 대접이라니... 고작 이거였나. 부끄러움이 부풀어 오른 팔뚝을 가리며 멍처럼 퍼져나갔다.      


©픽사베이


무릎이 벌벌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입사한 지 두 달도 채 못 된 나이 어린 영희 요양보호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삼십 대 후반의 그녀는 어린 나이로 입사 때부터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사람이었다. 팔십 킬로가 넘는 뚱뚱한 몸에 무릎 관절염으로 다리까지 조금 절면서도, 잠시도 앉아 쉬는 법 없이 부지런히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챙기는 걸로 이미 유명했다.      


“아픈 사람이니까, 아파서 그런 거니까, 어쩌겠어요? 건강한 우리가 참아드려야죠. 바른말, 바른 행동을 하면 뭐 하러 요양병원에 들어왔겠어요? 그런 사람이면 뭐 하러 가족들도 돈 들여가며 여기에 모셨겠어요? 그런 거 당해달라고, 그런 거 참아달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시험 치고 훈련받아 여기 있는 거 아닐까요? 까짓 거 때리면 맞아주고 욕하면 들어주죠 뭐. 하는 사람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겠어요?”     


“그러게. 바른말 자판기인 영희 보호사 말이니까 들어야지 뭐. 하긴 저 양반들 오죽이나 답답하고 심정 복잡하겠어? 그래도 건강해서 온갖 데 돌아다니며 일하는 우리가 낫지.”     



나는 최명동 님 병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가 노려보더니 오른팔을 움찔거리며 전투태세를 갖춘다.      


“안 해요. 석션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 최명동 님 팔이 아플 것 같아서,,, 주물러드리려고 왔어요. 그렇게 휘젓고 하시느라 아프시잖아요?”     


가만히 오른팔을 잡아 손에 힘을 빼고 주무르는데 눈물이 터진다. 최명동 님이 눈을 부릅뜨더니 꾹 감는 게 보인다.      


©픽사베이


“죄송해요. 석션 자꾸 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했는데... 그래서 힘든 건 당연히 참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라도 때리고 던지고 했을 거예요. 힘드시겠지만 억지로 기침이라도 해서 가래가 밖으로 뱉어지게 해 보세요. 그래야 돼요.”     


당신은 나를 때린 게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당신의 분노, 당신의 억울함, 당신의 절망... 당신이 부수고 짓이기고 싶은 건, 당신 없이도 돌아가고 있는 이 냉정한 세상에서 당신이 겪어내고 있는 모진 시간이라는거!  긁히고 멍들고 욱씬거리는 건 아직 너무도 명료한 당신 정신과, 정확한 균형으로 뛰고 있는 당신 심장이 아니냐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최명동 님 팔을 주무르고 있는 내 왼쪽 팔목에서 어느 사이 긴 나뭇가지처럼 굳은 피가 눈물 사이로 빛난다.       

또, 하루를 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저귀를 차라니! 차라리 죽여주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