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5
사람 35
간호부와 요양부가 총동원되어 병동 앞뒤 문을 가로막고 있다. 몇몇 힘센 요양보호사들이 인순 어르신을 안아서 옮기기 위해 시도해보지만 손도 쉽게 댈 수가 없다. 마음먹고 저항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무력도 초라하다.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내가, 내 집에 가겠다는 거야.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왜 나를 도둑놈 잡듯 잡아채는 거야?”
인순 어르신의 외침이 병동을 넘어온 병원을 흔든다.
“내 집에서 죽을 거야. 내가 멀쩡한 내 집 두고 왜 이런 고려장을 당해야 돼? 내보내만 줘. 병원비는 통장 도장 다 여기 주고 갈 테니 바로 빼 가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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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굽어 운신이 불편하긴 하지만 구십 세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너무도 건강이 양호한 인순 어르신. 그 나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경미한 치매 증상도 없다. 매월 정해진 날짜가 되면 두 개의 통장을 꺼내 전화로 상가 월세 입금을 확인하고, 아들이나 딸이 올 때마다 비어 있는 집단속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바로 저 한길 건너야. 시장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두 번째 집이 우리 집이야. 살살 걸어가면 되는 거리라고. 굽은 허리로 계단 내려오다 삐끗해 운신 못하고 누워 있으니까, 며칠 편히 쉬라고 우리 아들이 나 여기 데려온 거야. 이제 내가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는데 가야 되잖아? 왜 멀쩡한 사람이 여기서 살아야 돼? 나 보내줘. 제발 좀 보내 달라고.”
가방에 지팡이까지 챙긴 인순 어르신의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난다. 각자 일이 바쁜 병동 직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자 최 간호사가 환자 차트를 뒤적여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짐작대로 인순 어르신의 아들이다.
최 간호사의 표정이 곤혹감과 짜증으로 일그러진다. 수화기를 든 채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어떻게든 어르신을 달래 방으로 모시라는 무언의 말이 읽힌다.
눈치 빠른 인순 어르신이 나를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저 미소가 나는 가슴 아프다. 정말, 가슴 아파서 시선이 자꾸만 피해진다. 요양병원에 조무사로 일하며 어떤 업무보다도 힘들고 괴로운 건 늘 이런 때다. 사람의 감정을 속여야 되고 현실을 우회해 납득시켜야 하는 이런 때가 도무지 익숙해지지도 그냥 넘어가지지도 않는다.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회의와 죄스러움을 숨길 수 없다. 우린 결국 자식 입장에서, 자식 마음으로, 그들을 대신하는 기관이요, 사람들일 뿐이라는 자각이 자꾸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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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도 그러라지? 암, 멀쩡한 지 엄마를 이런 데 둘 아들이 아니지. 아직도 내가 운신이 힘든 줄 알고 퇴원 안 시키는 거지.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거 알면 한 시간도 여기 둘 그런 아들이 아니야.”
통화를 끝낸 최 간호사가 인순 어르신에게서 가방을 뺏으며 팔짱을 낀다. 구원군을 만난 것처럼 나는 조금 뒤로 비켜난다.
“어르신, 아들이 지금 해외 출장 중이래요. 그래서 지금은 올 수가 없대요. 그러니 지금은 안돼요. 보호자가 있어야 퇴원할 수 있다는 건 아시죠? 자, 들어가셔서 아들 올 때까지만 기다리세요. 아셨죠?”
“언제 온다는데? 이번에는 또 며칠이나 걸린대?”
뺏긴 가방을 움켜잡으려 팔을 뻗던 인순 할머니의 팔이 스르르 풀린다. 그 틈에 다른 손으로 잡고 있던 지팡이도 땅으로 떨어진다.
“한 이 주 정도 걸린대요. 아들 다니는 회사가 아주 잘되나 봐요. 그죠? 어르신은 식사 잘하시고 잘 계시면 돼요.”
그때였다. 인순 어르신이 바닥에 주저앉아 두 팔과 두 다리를 사방으로 휘저으며 소리 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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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속이려고, 내가 아무리 늙었지만 바보 천치인 줄 알아? 해외출장? 무슨 직장이 내가 전화할 때 딱 맞춰서 그때마다 해외출장을 보내? 늙었다고 다 노망드는 줄 알아? 다 알아. 다 안다고. 지 엄마 여기서 죽이려고 갖다 처넣은 거 내가 몰라서 그런 줄 알아?”
다시 병동 직원들이 모여든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끌고 오고 누군가는 컵에 물을 담아 뛰어오고, 또 누군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르신을 불러댄다. 굽은 허리의 인순 어르신 등이 더 안으로 말리며 끝없는 말을 토해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늘에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내 나이가 몇인 줄 알아? 알지? 구십이 넘었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저승 문턱이야. 그래서 집에 가려는 거야. 짐승도 제 집에서 죽고 싶어 해. 말 못 하는 짐승도 객사는 하기 싫어한다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집 놔두고 내가 여기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아. 나 좀 집에 보내 줘. 제발 좀. 여기 있대도 내가 주사를 맞아? 약을 먹어? 여기서 내게 하는 일이 뭐야? 밥 주고 목욕시켜 주는 거? 그건 내가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늙어서 혼자 두는 게 지네들 신경 쓰이면 지네 집으로 데려가든지, 지네가 들어와 살든지 해야지 이렇게 병원에 처넣으면 그게 될 일이야? 어디, 말 좀 해 봐. 당신들도 부모 늙으면 병원이랍시고 이런 데 보낼 거야? 병원비, 간병비 댔으니까 자식 도리 했다고 할 거냐고? 그러면서 집에서 혼자 죽게 안 했으니 얼굴 들고 살 거냐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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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말이 없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나는, 인순 어르신 털끝도 만질 수 없어 떨군 고개가 자꾸 아래로 아래로 더 떨어진다.
어느새 일어난 인순 어르신이 부축도 마다하고 굽은 허리로 벽을 짚으며 병실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