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7
사람 37
요양병원에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지 만 삼 년이 지났다. 이제 사 년 차다.
처음 계획은 삼 년이었다. 삼 년이면, 삼 년 정도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떠나보낸 딸로서의 회한과 죄스러움이 어느 정도는 메워지리라 생각했다.
생의 마지막 정거장인 요양병원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배웅자로서, 어머니가 계시던 병원 사람들이 했듯이 나도 해 드리면, 조금은 등을 펴고 살아질 줄 알았다.
그리고 삼 년이면, 내가 함께 있었던 그 정거장의 이야기,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가지 않을 곳!
내 가족과는 상관없는 곳!
따라서 거긴 남들이나 가는 곳!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양병원이다. 나와, 우리와, 세상과, 분리시킨 천형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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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그럴까? 자신 못할 것이 건강이고, 장담 못할 것이 수명이다. 백세시대라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러나 유병장수라는 수식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행히 숨 다하는 순간까지 스스로의 의지로 몸과 정신을 운신할 수 있는 천운을 타고났다고 해도,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막막하고 외로운 노년의 시간 말이다.
행복한 노년, 건강한 노년, 가족과 함께 하는 따듯한 노년은 세상에 많고 많은 긍정 이론가들에게 맡기고, 누구도 거들기 싫고 누구도 아는 척하기 싫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오고 있는 '시간'을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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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삼 년이 지났는데, 삼 년이면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을 만큼 요양병원과 요양병원 사람들에게 온 마음으로 공감될 줄 알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에 대한 공감능력만큼은 누구보다도 탁월하다고 자신했는데, 그래서 동료 직원들의 언행엔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 비난과 질시를 퍼부을 때 많았는데,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순간순간의 나를 보게 될 때마다 자괴감을 숨길 수 없다.
“그러게 젊어서 몸 관리 잘하지, 누가 저렇게 병들래? 다 자기 할 탓이지 누굴 원망해? 살아온 그대로 받는 거지 뭐. 먹는 게 입으로만 가나? 갈수록 욕만 늘어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남자 어르신 기저귀 케어를 하다가, 마비된 몸을 돌리는 게 무거워 땀을 뻘뻘 흘리고 나온 요양보호사가 한 말이다.
듣는 순간 불쾌한 거부의 감정이 솟아났다. 무례한 환자들에겐 화가 나고 짜증과 회의는 들 수 있다.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화와 짜증과 회의는 환자의 행위에 국한된 반응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병든 사람에게 누가 그렇게 병들라고 했냐고 한다거나, 병든 사람에게 살아온 그대로 받는 거라는 건 환자에 대한 인식 문제이자, 환자 케어를 하는 요양보호사로서의 자격 문제였다. 아니 사람의 인성 문제였다는 게 더 옳다.
“몸이 저 지경이 됐으면 성질이나 죽던가. 저러니 어느 자식이 모실 수 있겠어요? 우리야 돈 받는 입장이니 욕먹으면서도 하지만요. 누워서 오줌똥 싸는 사람이 무슨 벼슬 했다고 저리 날뛰는지...”
아마 내가 떳떳했다면 조목조목 지적하며 요양보호사에게 불쾌한 내색이라도 했을 것이다. 당신이 이 병원에 있는 이유와, 당신이 갖고 있는 자격증이 무슨 일을 하라고 국가에서 준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런 발언은 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생각까지는 할 줄도 몰랐지만, 말과 생각의 수위가 달랐다고는 해도 환자들을 대하는 동안, 나 역시 치밀어 오르는 온갖 감정으로 비탈진 시간을 살아왔다는 자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실한 무엇이 생겼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경험으로 이 자리에 있게 된 나도 그런데, ‘직업’으로 선택해 병원 직원이 된 사람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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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보다도 병원이란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직업적인 능력만큼 ‘공감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요양병원은 일반 병원보다도 더 그것이 필요한 곳이다. 수족을 못 쓰거나 불편한 뇌혈관질환 환자와, 정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치매 환자들이 주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교양과 격식과 예의를 요구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요양병원이다.
요양병원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의사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비롯해, 방사선사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등이 그 주축이다. 모두 자기 업무에 필요한 면허증 혹은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환자 한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을 다 거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속한 단체도 활성화되어 보수교육을 비롯해 많은 정보 교환, 경험 공유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간호조무사만 해도 일 년에 한 번은 무조건 온 라인 교육 네 시간과 대면 교육 네 시간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것은 자격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교육 일정이 나왔다. 교육 후에는 또 예외 없이 강의 후기와 요구 사항을 적어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엔 구체적으로 성의를 다해 적어낼 것을 미리 다짐한다.
“공감 능력 자격시험을 도입해 주세요. 기존 조무사들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을 치를 예비 조무사들은 이 시험에 합격해야 조무사 국가고시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선택이 아니라 전공필수 과목으로 추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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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협회에도 제안해 볼 마음이 커진다. 요양보호사들이야말로 가장 최일선에서, 가장 내밀한 환자의 지기가 아닌가. 환자로선 가장 보여주기 싫고 부끄러운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요양보호사니 말이다.
간호, 간병의 첫째 조건은 공감 능력이다.
그래서 사 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나는 신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