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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un 03. 2019

부모님들의 마지막 나라는 거짓말 공화국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8

사람 38     

                

      부모님들의 마지막 나라는 거짓말 공화국     



“어르신, 장조림 드시고 싶으세요? 아니면 이 젓갈? 며느님한테 전화해서 좀 해 오라고 할까요?”     


옆 병상 민옥 어르신 식사 판에서 시선을 못 떼는 인숙 어르신. 수저를 든 채 남이 밥 먹는 모습만 보고 있는 인숙 어르신께 내가 말했다. 오전에 딸이 다녀간 민옥 어르신 식탁 위엔 새로 해 온 반찬이 담겨 있는 여러 개의 반찬 통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열려 있었다.      


“아니야. 이것저것 해 온다는 걸 내가 말렸어. 올 때마다 뭘 그렇게 해 오겠다는 게 많은지 그거 말리는 것도 귀찮아 죽겠어. 안 먹을 거 해 오면 돈만 아깝지 안 그래? 내가 원래 입이 짧아.”     


인숙 어르신이 수저를 놓으며 자리에 눕고 만다. 숟가락 흔적만 있지 거의 뜨지 않은 병원식이 볼품없게 식어 있다.     


“인숙 어르신, 이렇게 식사 안 하시면 안 돼요. 조금만 더 드세요. 제가 도와 드릴까요?”     

“배 안 고파. 어제 우리 딸이 사다준 과자랑 빵을 여태 먹었어.”  


©픽사베이



나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인숙 어르신의 보호자가 다녀간 지가 못 돼도 두 달은 넘었기 때문이었다. 좀 있다가 간호부에 있는 케익이라도 한 조각 갖다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병실을 나오는데, 민옥 어르신의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발길을 막았다.       


“저 노인네 거짓말하는 거야. 어제 무슨 딸이 왔다는 거야? 나 여기 입원하고 한 번도 저 집 자식들 본 적도 없는데. 아까도 우리 며느리가 냉장고에 넣으려고 반찬들 펼쳐 놓으니까, 그건 뭐요? 하며 일일이 묻더니 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하더라고. 자식새끼들이 안 오니까 거짓말만 늘어.”     


“이 할망구야. 늙어서 식탐은 세상 꼴불견이야. 병든 것도 미안한데 이거 해 와라, 저거 해 와라, 부끄럽지도 않아? 저승길이 코앞인데 그렇게 처먹다간 목에 기름 껴서 숨도 안 끊어져.”     


돌아누운 인숙 어르신이 이불을 훽 몸에 말며 소리를 질렀다.     


“안 해다 주니까 못 먹는 거지, 지금도 산송장인데 죽을 거 걱정해 미리 안 먹는다는 저 말이, 그래서 웃긴다는 거야. 내가 나 혼자 먹기가 뭣해서 통 오지 않는 저 할망구 자식들 욕을 좀 했더니 저 난리야. 뻔한 거짓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그 와중에도 밥 한 그릇을 다 비운 민옥 어르신은 의기양양한 트림까지 내쉬고 있었다.     


“아무거나 해 온다고 그게 자랑할 일이야? 우리 자식들은 하나를 해 와도 꼭 물어보고 해 와. 남한테 유세하려고 이빨도 없는 늙은이한테 장조림이 웬 말이야? 그 비린 젓갈은 다 뭐고. 한번 해다 주면 오래 먹으라고 졸이고 비린 것들이나 해오는 것도 자식이라고 편들기는?”     


인숙 어르신의 어깨가 이불 아래서 강한 벽처럼 자꾸 굳고 있었다.      


“어미 입맛 도라고 짭짤하게 해 오는 게 뭐 어때서? 김치 하나 갖다 놓은 게 없는 할망구가 어디 남의 자식들 욕보이고 있어? 이 할망구야, 자식이 열 있으면 뭐해? 지들 어미가 뭘 얻어먹고 사는지도 모르고, 뭘 먹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놈들인데, 우리 자식들은 귀찮도록 물어. 다음엔 뭘 해다 드릴까 하고.”     


식탁에 늘비한 반찬통을 훈장처럼 쓰다듬으며 끝까지 쐐기를 박는 민옥 어르신을 향해 기어이 곱지 않은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왔다.      


“민옥 어르신, 어제 인숙 어르신 자녀들 다 다녀갔어요. 어르신 재활 가셨을 때요. 간식도 저희한테 많이 맡겨놓고 가셨고요.”     


아마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내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음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그랬다. 과자와 두유 등이 삼 층 높이로 쌓여 있는 민옥 어르신의 협탁을 보며, 먹을 것 하나 없이 썰렁한 인숙 어르신의 협탁에 내 작은 동조라도 얹어주고 싶었다.   


 ©픽사베이

 



병실을 나와 간호부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내게 윤 간호사가 물었다.     


“샘, 뭐해요?”

“인숙 어르신 협탁에 좀 갖다 놓으려고요.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어르신의 거짓말이 슬퍼서 그렇죠? 하지만 그대로 인정하시게 해야 해요. 같은 병실 어르신들도 속아주지 않고요. 5호 병실도 난리 났던데요?”

“왜요?”

“또 그거죠 뭐. 누가누가 잘하나, 우리 자식 최고지!”     


 



남자 병실인 5호는 그야말로 쓰나미가 쓸고 간 뒷모습 같았다. 서로 집어던진 베개랑 물통 등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숟가락이랑 젓가락을 칼과 창처럼 양 손에 잡고 있는 어르신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들이 집에서 모신다고 사정하는 걸 내가 우겨서 왔다니까, 왜 그걸 거짓말한다고 때마다 핀잔 주는 거야? 자기가 자식들이 끌어다 여기 갖다 놨으니 다 그런 줄 아는 거지.”     


의홍 어르신의 눈빛은 으르렁거리는 사자 같았다. 호경 어르신도 지지 않았다.      


“누가 모를 줄 알고? 여기 있다고 귀까지 다 먹은 줄 알아? 어쩌다 오는 아들놈한테 집에 간다고 사정하는 거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해대는 거야?”     


“그건 영감이 그런 형편이니까 남들도 다 그런 줄 아는 거야. 나는 의사 간호사가 있는 병원이 안심되고 좋아서 온 사람이야. 우리 자식들이 얼마나 안 된다고 울며불며 말린 줄 알아? 아비 명이니 억지로 따라준 거라고. 지 자식 불효에 어디 감히 내 아들을 갖다 붙여?”     


“이 영감탱이야. 내 자식들은 사방 백 리에 소문난 효자효녀들이야. 이 전화기도 큰 아들이 걸어준 거고. 전화기 하나 없어 걸핏하면 간호사한테 집에 전화해 달라는 위인이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나 참, 그거 왜 걸어준 줄 알아? 언제 죽나 그 소식 기다리는 거야. 뭐 당신 안부 궁금해서 그런 줄 알아? 사방 백리, 효자효녀? 웃기고 있네. 전화기가 왜 필요해? 사흘이 멀다 않고 내 자식들은 오는데. 한번 불쑥 다녀가면 함흥차사인 영감탱이 자식들이니 전화질로 때우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당신 자식들은 죽으면 입혀 달라고 꼬질꼬질한 양복까지 미리 갖다 놨어? 우리 아들은 나 입혀 보내려고 최고급 명주로 만든 수의를 준비해 놓은 효자야.”     


“봤어? 봤냐고?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말이지 그게. 나는 수의를 준비한다는 걸 어차피 불에 탈 걸 왜 하냐고 말린 사람이야. 집에 두고 온 양복이랑 한복이 철철이 많은데 뭐하려 수의를 해?”     


“철철이 많다는 옷이 그 모양이냐? 당신이 보자기 끌러 펼쳐볼 때마다 보면 옷감도 재단도 싸구려 엉망이더구먼.”     


입원병동으로 이동된 후 가장 큰 변화가 환자들의 말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는 거였다. 의식 없는 환자가 대부분인 중환자 병동은 보호자들의 말소리뿐이었는데, 입원병동은 그렇지 않았다. 뇌졸중에 치매, 그리고 다른 복합적인 병들을 갖고 있어도 의식은 있어 그야말로 아수라장 같았다.  

  

©픽사베이



바로 옆 병실에서 두 어르신의 다툼을 막 겪고 나온 나는,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저분들의 자식들은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현실 속 시간을, 얼마나 많은 말과 상상으로 변형시키고 확대시켜, 자식들을 지키고 있는지 짐작이라도 할까?      

내 어머니도 거짓말을 했을까? 오랜 병원 생활 동안 어떤 거짓말로 나를 천하의 효녀로 둔갑시켰을까? 어머니가 오랜 병상에 계셔서 보호자로 십육 년을 드나들었지만, 조무사가 되어 병원 직원이 되지 않았다면 짐작도 못했을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의 시간을 보는 마음에 도저히 막아지지 않는 울음이 차올랐다.      


요양병원은 거짓말 공화국이다. 세상 많은 부모들의 마지막 나라, 자식들을 효자효녀로 둔갑시키는 프로젝트가 헌법 1조 인 우리 부모들의 나라! 거짓말 공화국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에 의해 모두가 효자효녀로 다시 태어난다.      


조무사로 일하면서 더 뼈아프게 어머니가 그리운 것도, 하늘나라에서조차 딸 효녀 만들기에 여념 없으실 어머니를 알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면 모두가 나라 하나를 다시 세운다. 거짓말 공화국! 그리고 헌법 1조는 똑같다. 자식을 효자효녀로 세상에 남기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거짓말 공화국에 우리들의 부모들이 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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