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두 팔이 올라갔다. 반가운 사람과의 조우라도 그렇게 기뻤을까? 그렇게 단숨에 발길을 멈추게 하고 그렇게 단숨에 그때 그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 수 있었을까? 나는 올린 두 팔로 40년 세월을 거뜬하게 안았다. 하나도 지워지지 않았던 시간이 하나도 무겁지 않게 내 두 팔 안에 안전하게 들어왔다. 하트는 저절로 만들어졌다. 올린 두 팔 아래 양 손가락 열 개가 40년이란 시간 앞에 인사하듯 모아 내려졌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인사동 빵집 <태극당> 앞에서였다.
핸드폰을 던지듯 후배에게 맡겼다. 그리고 태극당이란 글자가 보이는 간판 앞에서 나는 40년 전 대구 여고생으로 단박에 돌아갔다. 지나왔다고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곁눈질마저도 멈추었던 지난 시간과의 조우는 그렇게 벅찼다.
내가 나를 껴안는 하트도 만들고, 발바닥부터 있는 힘을 다 끌어올려 나를 응원하는 V도 만들었다. 전혜린이 옆에 섰고 릴케와 바이런이 팔짱을 꼈다. 하이네와 한용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어왔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온몸으로 그들을 맞았다. 나를 맞았다. 내가 걸어왔던 길과 공기와 이야기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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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으로 달려가는 기억의 화살표, 대구 동성로에 있던 빵집 태극당! 맛있는 빵과, 거리를 채우던 햇살이랑 빗줄기가 훤히 보이는 넓은 창과, 마주 앉으면 속말이 들릴 만큼 작고 예쁜 테이블이 있던 곳. 어느덧 나는 여고 2학년, 고등학생이라서 카페는 데리고 갈 수 없다며 태극당으로 날 만나러 오던 사람의 청순한 소녀로 되돌아가 있었다.
주름이 날아가고 흰머리가 날아가고 켜켜이 쌓인 외로움이 날아갔다. 떨려서 붉었던 양볼이 만져졌고 설렘에 자글자글 끓었던 피돌기도 느껴졌다. 인사동, 소란스런 그 거리에서 만난 ‘태극당’이란 글자의 간판은 그렇게 나를 돌아 세웠다.
1984년 3월 31일 결혼 하루 전날, 6년의 말과 시간을 추억하며 그 사람과 함께 찾아 단팥빵과 환타로 서로를 축복했던 곳. 서울 사람이 된 후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어느 시인의 시 제목처럼 나와 그 사람에겐 싱그러웠던 첫사랑의 <추억 역>이 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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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다. 하나도 녹슬거나 찢겨나가지 않은 그때의 시간과 그것을 호출하고 있는 견고한 기억. 대구 동성로도 아니고, 정사각형 운동장 같던 그 모습도 아니었지만,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월이 떨어뜨린 내 체온을 다시 달굴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사무친 장소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장소와 그 사람과 함께였던 자신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그곳에 가 있는, 그때의 나를 영접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열여덟을 산다. 빵을 놓고도 먹지 못하고 환타가 담긴 유리컵을 달달 떨리는 손으로 잡고만 있었던 여고 2학년으로 다시 산다. 그 사람이 물기 많아 아름답다고 했던 젖은 눈망울의 소녀로, 너무 맑고 순수해 자신이 도둑놈 같다고 했던 그 사람의 어린 사랑으로 다시 산다.
열여덟의 소녀가 결혼해 아내가 될 때까지 그 사람을 바다海라고 불렀던 기억이 소환된 곳! 인사동엔 무수히 많은 그와 내가 물결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그 사람과 내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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