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람, 커뮤니티,
영향을 준 단체, 기관들

by N잡러

그 첫 시작은 2008년 도서관옆신호등이었다.

독서교육 그것도 공공자원인 도서관을 이용한 독서교육이었으니 나에겐 중요한 공동체였다. 그림책을 제대로 공부했고 아이들을 직접 만나 수업도 했으며 무엇보다 강사로서 첫발을 내딛게 해준 곳이다. 강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토대로 각자가 주제를 잡고 강의안을 만들라는 것도 무모했지만, 한 번도 강의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강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다. 물론 강의ppt 점검을 받긴 했다. 그때 받은 점검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강의안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며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마지막엔 마무리하는 영상이나 임펙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했다.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실제로 해볼 좋은 기회였다. 대상도 학부모부터 교사 연수까지 다양했다. 이곳에서 배운 내용으로 지역 아이들과 수업도 했다.

무엇보다 배운 것을 직접 활용하기 위해 초등학교 책읽기, 유치원 책읽기 봉사를 한 것이 나에겐 큰 자산이다. 이를 계기로 자원봉사활동도 계속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다.

우연히 본 책에서 단체를 알게 되었고 마침 ‘등대지기학교’라는 부모교육을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2010년 5기 등대지기를 시작으로 후원회원이 되었다. 2011년 단체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100인 강사클럽이란 이름으로 강사를 모집했고, 노워리 상담넷이라는 온라인 상담소도 개소했다. 모든 등대지기 강좌를 들은 후원회원들에게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엔 정말 사교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지지받는 느낌에 좋았고 정말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강의했던 경험이 강사활동에 지원하게 됐고, 주제가 독서였기에 독서상담팀장까지 맡게 되었다. 두 분야에서 나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준 곳이다. 무엇보다 개인에서 사회로 나의 시야를 확장해준 곳이다. 시민단체 활동은 처음이었다. 자녀교육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했었다. 사회 구조, 교육정책, 교육과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교육과정을 알고 거기에 잘 맞춰 교육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도서관옆신호등의 독서 강의는 교과서 분석을 하고 교과서에 수록된 책들을 미리 읽어 가도록 강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했다 싶다. 엄마표 독서교육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알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단체를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아들을 밀어붙였을 것이며, 그 역반응으로 사춘기 부딪힘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다. 나와 아들을 위해서도 참 감사한 단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무엇보다 인정을 많이 받았다. 초창기 멤버였기에 참여할 수 있었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세 번째는 2017년 푸른나무재단과 만사소년이다.

아들 사건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푸른나무재단(구 청예단)의 전화상담봉사가 무엇보다 내 책의 디테일과 현실성을 주었다. 내가 겪은 적은 경험치의 한계와 내가 겪지 못한 것들의 피상적인 것들을 해소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에 관해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상담의 중요성도 배워가는 중이다. 상담봉사자들과의 교류 역시 좋다. 혹시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기에 상담내용을 같이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는다.

강사연수를 받았으나 강의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책이 나오며 자연스럽게 강의 기회는 올 것이다.

만사소년은 2인3각 프로그램을 통해 비행청소년을 직접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 곳이다. 덕분에 막연하게 ‘비행청소년은 이렇겠지?’ 했던 것들, 선입견을 없애주었다.

마지막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다.

연구원을 하기 전과 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삶이다. 2016년 8월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끝내고 하반기는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2년 석사과정 동안 인문학을 공부했으나 인문학적 소양이 적은 나에겐 2년의 과정으론 깊이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책 출간을 막연한 희망 사항으로 품고 있다가 『메모습관의 힘』의 저자인 신정철의 세바시 강연을 보고,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씨가 한 ‘말하는 대로’ 방송을 보았다. 공통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라는 말이 구체적인 방법일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동안 내버려 두었던 블로그에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에 운영하던 카페도 있었지만, 그곳은 정보 중심의 카페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조회수 많은 글들을 보며 이제 사람들은 정보보다 스토리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 1인 1책 등 책 쓰기 학교가 있는 것을 알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도 얻고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보기도 했다. 책은 그들의 프로그램 홍보 위주라 정확하게 알 길이 없었다. 다른 책쓰기 강사가 1일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특강을 들어보고 무료 코칭도 받았다. 본인 프로그램 등록을 권유받았지만, 왠지 시대적 트렌드로 부각된 하나의 사업으로 여겨져서 망설였다. 평소 알고 있던 출판사 대표에게 문의하게 되었고 역시나 출판계에서 보는 시각이 나의 염려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출판사 대표의 추천으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선발기준의 세 번째 항목인 “수련기간 안에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책을 써 냄으로써 자신과 세상의 변화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란 내용을 보았다. 보리출판사 대표님이신 윤구병씨의 강의에서 “책을 내면서 항상 고민한다. 과연 나무를 벨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라던 말씀을 들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인 출세와 욕심으로만 책을 내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던 나였기에 내가 고민했던 ‘내가 책을 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변화경영연구소는 여타 다른 책쓰기 학교처럼 단순히 책을 출판하는 기술적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커리큘럼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11기 연구원이 되면 그 1년의 기간을 통해 읽게 되는 책과 글쓰기, 오프모임을 통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되었다. 그동안의 활동들과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연구원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배움이 생길지, 영향을 받게 될지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깊이 있는 나만의 책 주제를 찾게 되기를 희망했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오래도록 읽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더 나아가 책을 읽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11기 지원할 땐 책을 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구본형 선생님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연구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책을 내기 위해 책을 보고 글을 쓰다 보면 책을 낼 수 있겠거니 했다. 오프 수업의 과제는 의미도 몰랐다.

“매주 월요일 정오부터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11기 동기들의 칼럼과 북리뷰를 본다. 같은 눈높이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각 동기 글의 장점과 아쉬운 점, 좋은 표현들, 구성까지 보인다. 그리고 내 글을 보니 부족한 점과 보완해야 할 점도 알게 된다. 가까이 보아야 잘 보인다지만 멀리 보니 더 잘 보였다.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한 번에 올라간 것은 아니다. 처음엔 옆에 두고도 뉴턴처럼 거인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나에게 ‘웨버라는 이름’ 거인을 소개해준 것은 교육팀이었다. 웨버이기에 과제 시간 체크하고 독려하면서 글 내용을 보고 댓글 달았다. 의무감처럼 했다. 솔직히 내 과제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우려도 했다. 거인의 발밑에서 열심히 해보려 까치발을 들었다. 그러다 거인을 줬는데도 거인을 못 알아보는 게 안타까웠는지 교육팀 선배들이 ‘거인 활용법’에 관한 팁을 줬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칼럼 쓰는 것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길게도 써보고 짧게도 써보고 다양하게 써봐라.”라고 직접 얘기하기도 했고, Morning Page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저 “역시 웨버” 이러며 추임새만 넣어주는 선배도 있었다. 그리고 난 알았다. 거인 활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이제 거인의 존재를 알았다. 신기했다. 존재만을 알게 됐는데도 뭔가 뿌듯했다.

우선 우리 교육과정 커리큘럼을 다시 봤다. 그러니 보이더라. 왜 책 구성을 이렇게 했는지, 북리뷰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쓰려고 하는 주제는 이미 세상에 다 나와 있다. 독자들은 우리가 누군지 모른다.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우린 거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거인의 어깨를 빌려야 한다. 그들의 말을 내 말처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의 장점과 삶의 이력에서 주제를 찾아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러기에 1년의 연구원과정이 끝났다고 저절로 찾아지는 게 아니라고 한 것이다. 6월까지 커리큘럼은 입문과정에 불과하다. 7월부터 본격적인 심화이며, 10월부턴 내면 깊숙이 본질적인 것들을 탐구하고 11월, 12월 나 자신을 알고, 1월엔 책 쓰기 연습에 돌입한다. 알고 나니 책에서 뭘 봐야 하고, 쓸거리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여기까지 오니 거인의 허리더라. 여기까지 오기에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다. 허리까지 왔더니 시야가 환해졌다. 라식수술을 하고 난 후 세상이 다 선명해 보이는 그 느낌이다.

직관이 뛰어났던 구본형이란 거인이 옆에 있었으면 좀 더 수월했을까? 불친절한 교육팀 덕분에 내가 이렇게 찾게 했으니 감사해야 하나. 다행히 직관이 뛰어난 동기의 “공간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겠어요.”라던 말 한마디에 내 주제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좀 넓게 파는 것이 좋다. 그래야 깊게 팔 수 있다. 2주간 Morning Page를 1시간씩 쓰고, 글쓰기 책을 보며 고민을 하다 나만의 contents를 목록화하면서, 떠오르는 글감들은 노트에 적거나 바로 노트북에 쓰고 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드디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공자에게 『주역』이, 나에겐 동기들의 칼럼과 북리뷰다. 또한, 뉴턴의 거인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선배 연구원들이다. 칼럼을 묶어 책을 출판한 선배들의 칼럼까지 보고, 선배들을 찾아가 인터뷰도 하려 한다. 그럼 지금보다 더 멀리 더 자세히 보일 것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책을 쓰게 되리라는 나의 천명을 알게 된(知天命) 나, 곧 세상을 얻으리라.“


위의 글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자, 세상을 얻는다.’라는 제목의 11기 6월 칼럼이다. 물론 책 주제는 달라졌지만, 연구원 과정을 그나마 이해하게 된 달이었다. 오프 수업이 내면 탐색과정이라고 했다. 무엇이 되었든 할 생각이었고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또한, 지원할 때 나만의 주제를 찾게 되길 바랐는데 정말 그 바람대로 되었다. 감사하다.

다음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원 마지막 오프수업 후기다.


“10번의 오프수업을 했다. 막연하게 책을 쓰겠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주제를 잡았고,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4번의 책 수업에서 서로 다른 선배들의 조언과 피드백으로 방향도 수정하고 내용도 수정했다. 4월에 장례식을 할 땐 그저 형식적인 통과의례처럼 느껴져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때 이후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만 다르다.

변경연 10개월의 과정의 가장 큰 덕을 본 건 나다. 나를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쉰이 된 올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야를 새롭게 시작하고 이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게다가 책의 주제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했는데…….“


물론 처음엔 그걸 주제로 하진 않았다. 그저 과정 중 치유의 글쓰기처럼, 복기하며 써보고 싶었다. 한바탕 써내고 나니 정리가 되더라. 그것으로 만족했다.

글은 삶으로 살아낸 것이 가지는 힘이 있다. 그것이 부정적이고 아픈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동기에게 “왜 그 주제를 쓰려고 하느냐? 자랑하는 거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 당시엔 흘려버린 그 말이 나중에 계속 기억에 남았다. 선배들은 오히려 나와 아들을 걱정했다. 독자에게, 혹은 피해자 가족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피,가해자를 다 다루면서 피해가라고도 했다.

출판사나 작가들은 반대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가해자인 사실을 다 드러내라 했다. 다행히 아들은 반대하지 않았고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나 역시 내공이 생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적극적인 상담, 강의 등에 참여하게 되었다.


7월 오프수업 때 자문위원인 선배가 오프 수업은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했다. 딱 맞는 표현이다. 서로 다른 거울로 다른 나의 모습과 내면을 비춰준다. 어떤 거울은 부드럽게, 어떤 거울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거울을 마주하는 것은 나다. 불편한 거울을 마주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던,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변화경영연구소는 나에게 책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다섯 공동체를 통해 삶이 변했다. 프로 N잡러가 되는 도구에서 빠질 수 없다.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알게 해준 스승이 되었고 일도 되었다. 스마트에듀빌더의 강사진 대부분이 위의 기관과 단체에서 알게된 사람들이다. 10년 넘게 경제활동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았더니 이제 그것으로 돈이 되는 삶이 되었다. 1인기업가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벗어나려면 사람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을 갖추긴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니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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