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조합이 참 재미있다. 진실이 생명인 뉴스와 절대 진실일 수 없는 단어 가짜가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은 왜 생겨났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가짜 뉴스’의 정확한 의미부터 짚어 보기로 하자. ‘가짜 뉴스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 또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아예 없었던 일을 언론사 기사처럼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짜 뉴스라는 말은 이러한 거짓 정보가 너무 많이 생성돼서 진짜 정보와 구별 짓다 보니 생겨난 말일 것이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가짜 뉴스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이 유형은 의도성의 존재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그래프의 가짜 정보 유형을 조금 더 보기 쉽게 이미지로 정리했다.
가짜 뉴스의 유형 중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의도된 가짜 정보, 잘못된 정보, 협의의 페이크 뉴스이다.
우선, 의도성이 있는 가짜 정보에는 Disinformation(특히 정부 기관에서 고의로 유포한 허위 정보), Hoax(사기성 메일)이 있다. Disinformation 은 뒤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고 Hoax 먼저 알아보면, Hoax(사기성 메일)가 예전에는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협박성의 내용을 무작위로 배포하면 많은 사람이 연락이 왔다고 한다. 동영상을 배포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해서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가 뉴스에 보도되었었다. 요즘은 비트코인을 일반인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세계보건기구를 사칭해 비트 코인을 통한 기부를 유도하거나,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 지원금 관련 사기 메일을 보내거나, 영국 정부나 CDC로 불리는 질병통제예방센터로 속여 말한 메일의 양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다음으로 알아볼 가짜 뉴스의 유형인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는 의도성이 없다. 예를 들면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초기에 입안에 소금물을 뿌리면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방법이나, 항생제가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등의 정보는 확진자의 수를 더 늘리려는 의도된 정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협의의 페이크 뉴스(Disinformation-특히 정부 기관에서 고의로 유포한 허위 정보)를 매우 주의 깊게 알아보자. 협의의 페이크 뉴스(Disinformation)는 선전(사회학), 선동이라고 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인 MZ세대에게는 낯선 단어이지만 어른 세대에게는 꽤 익숙한 단어이다. 단어는 낯설어도 의미는 익숙할 수 있다.
협의의 페이크는 한국사, 세계사 모두에서 역사가 굉장히 깊다.
한국사에서 꼭 알아야 할 가짜 뉴스는 <관동대학살>이다. 일본 간도에서 지진이 나자 ”조센징이 공동 우물에 독을 넣었다.”라는 의도된 유언비어를 퍼트려 수많은 조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왜 일본에서 지진이 났는데 조선인이 학살을 당해야 했을까?
관동대학살은 관동대지진과 연관이 있는 사건으로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에서 M7.2~M7.9의 지진이 5분 간격으로 세 번의 지진이 발생, 3차례 지진 모두 진도가 5분간 지속되었고, 그 여진 또한 2일 동안 15차례 발생으로 그 피해가 엄청났던 지진이라 세계에서 3번째로 규모가 컸던 지진으로 기록되어있는 사건이다.
10만 명 이상이 사망, 20만 채 이상의 집이 무너졌고,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도쿄 기온은 46℃까지 상승했다. 지진피해액은 전년도 일본 총생산량 ⅓이었다. 일본은 거의 무정부 상태였다. 일본에 국가적 위기가 닥치자 일본 정부는 상황을 수습하고 민심을 안심시키기보다 불안해하는 민심의 눈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을 이용하기로 한다. 내무대신(前 조선총독부 정무 총감)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인이 쳐들어오니, 여자와 어린아이는 빨리 대피시켜라”라고 경찰과 군인들이 확성기로 외치고 다니게 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에 지진이 나면 대한민국 사람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내용의 글이 SNS에 올라온다. 그 글들을 조사하다가 주어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글을 보게 되었다.
”저 악랄한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평소 유대인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문장은 굉장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특히 그냥 유대인이 아닌 악랄한 유대인이라는 말은 상당한 적대감의 표현이기에 더 궁금했다. 그렇다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유대인은 왜 그랬을까?
유대인은 B.C582~1948년까지 2,500여 년 동안 국가는 없고 민족만 있던 <유대인 방랑시대>의 역사가 있다. 이 역사로 인해 유대인은 유럽 전역에 피지배자의 계급으로 생활하게 된다. 특히 기독교 세계에서 유대인은 그 권리와 특권을 거의 빼앗기고 살았다. 서기 590년 로마의 감독관이 된 교황 그레고리 1세는 약자인 유대인을 보호하는 척하며 내부로는 ‘반유대주의’를 조장했다. 반유대주의로 인한 유대인의 피해는 컸다. 유대인은 일반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금지하는 이자 수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에서 유대인에 대한 폭력은 묵인되었다. 무차별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대인은 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정의를 위한 폭력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국가도 없는 유대인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유대인의 생존 방법은 ‘학자 지도 체계’와 탈무드였다. 유대인에게 배움은 신념에 가까웠다. 또한 학자는 무역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유대인을 최초의 합리주의자라 할 만하다. 탈무드를 통해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각자가 이념을 갖게 하는 교육으로 시대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는 유대인을 만들어 냈다. 유대인은 안식일과 식사법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유대 사회에서 도축하는 사람을 ‘쇼헤트’라고 하는데 신앙심, 학식, 선한 행실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대인은 복지 공동체를 위한 모금을 하는 ‘쿠퍼’를 운영했다. 쿠퍼를 통해 가난한 유대인에게 좋은 음식 재료를 공급해주었다. 유대인에게 식사 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매우 엄격한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유대인이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의 규율이 반유대주의를 더 확산시켰다. 1144년 영국의 노리치에서 윌리엄이라는 소년이 실종되었다. 윌리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유대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거였다는 목격담으로 노리치에 사는 모든 유대인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그 이후로 노리치에서의 살인 사건의 범인은 유대인으로 지목되어 학살당하거나 도망갔다. 그런데도 유대인은 대금업으로 돈을 모았고, 귀족과 평민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
1347년 흑사병이 지중해에서 북쪽으로, 유럽 전역으로 전염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는데 그 원인은 찾을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그 원인을 인간이 악의적으로 퍼트린 질병이라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을 고문해 ”샤보이의 요한이라는 사람이 작은 꾸러미를 주면서 우물과 물웅덩이, 샘에 뿌려라.”라는 허위 자백을 받게 된다. 이 자백으로 샤보이의 요한이라는 모든 유대인은 사형에 처한다.
중세 시대의 유대인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유대인이 암퇘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오줌을 받아먹고, 돼지의 젖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런 이미지는 인쇄물뿐만 아니라 교회의 벽이나 기둥에도 조각이 되었다. 특히 독일은 그 정도가 심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의 가짜 뉴스를 알아보았다. 악의적인 가짜 뉴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약자를 대상으로 만들어 낸다. 민심의 눈을 돌리기 위해서다. 뉴미디어 시대에 사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