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윤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위의 대사는 영화에서 연희전문대학에 다니던 윤동주가 평소 존경하던 정지용 시인을 만났을 때 정지용 시인이 한 말이다. 영화 <동주>에서는 부끄러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심문을 받으며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 하겠습니다.”라며 지식인의 부끄럼과 개인의 부끄럼을 이야기한다.
나도 두 번의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하나는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일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의 해였다. KBS 1TV에서 <도올아인 오방간다> 10회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편‘을 방송했다. 유아인은 ’부끄럼’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초등학생 시절 누나의 글을 내서 1등을 했으나 밝히지 않았던 내용, 이후 약자를 괴롭히는 학교에서 모습에 방관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유아인은 영화 <동주>에서 동주 역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감독이 강하늘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아인이 자신의 부끄럼을 고백하며 프로그램에 넣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유아인이 자신에게 박수 치지 말라고 한 것은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비해 자신의 부끄러움은 정말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방송을 보며 내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MRA(Moral Re-Armament, 도덕 재무장)라는 걸 가입했다. 본부에서 선배 동아리 회장을 통해 시화전을 하려고 하니 학교마다 회원들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그 당시엔 시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서 전시하는 시화전이란 것이 있었다. 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시를 써보지도 않았던 나는 작은 언니가 쓴 시를 내가 쓴 것처럼 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서 그나마 그림은 내 그림이었다. 그 시화가 당선이 되어, 각 학교에서 당선된 학생들을 모아 ‘문학의 밤’ 행사를 했다. 순서를 정해 황금찬 시인 앞에서 직접 낭송을 하는 행사였다.
그 일로 학교 선배들이 본부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내가 동아리 임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동아리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일들과 새로운 경험들, 존재감 없던 나를 드러낼 수 있었던 즐거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불편함도 커졌다. 도덕재무장이라는 동아리 정신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라 더욱 그랬다. 그땐 부끄럽다기보다 남을 속였다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선배, 동기, 본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학생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했다. 나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을 하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영화 <동주>와 <도올아인 오방간다> 유아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학창시절의 한 기억으로 자리잡은 나의 부끄러움이 생각났다.
시를 좋아하거나 시집을 사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소설책은 사지만 시집을 산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출판시장에서 시집 출간이 어렵다고 한다. 시집을 사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유독 시를 좋아하기는커녕 싫어했다. 은유적인 표현들이 나에게는 애매함으로 다가왔다. ‘뭐라는 거야. 그냥 알아듣게 이야기하지….‘ 이런 거였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중에 빠지지 않는 시가 윤동주의 시라고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와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시구가 떠오르는 <별 헤는 밤>은 아는 사람이 많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고민한 지식인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이라고 배웠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중에 변절하지 않은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별을 노래한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윤동주의 시를 배우며 ’어떻게 일제강점기의 힘겨운 시절에 저렇게 서정적인 시를 쓸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국어 시간에 배운 시는 감상이나 비판이 목적이라기보다 수많은 표현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은유법, 댓구법, 공감각적 표현 등등.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며 시를 잘게 잘게 쪼개 전체 시가 어떤 내용인지 느낄 수 없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대사에 “시어는 하나하나 따져가며 읽는 것이 아닙니다.”가 있다. 심문하던 일본인이 시어에서 불온사상이 감지된다고 하자 한 말인데, 나는 한국에서의 시 교육을 꼬집는 것 같고 내가 학교 교육에서 유독 시를 싫어했던 이유를 알게 된 장면이었다.
2014년 여름에, 아들이 좀 다른 방학을 보내면 어떨까 싶어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친한 친구들을 모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 하나로 시를 암송하게 해야겠다 싶었다. 여름방학 과제이기도 하고 개학을 하면 수행평가로 윤동주의 시를 외워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삶을 2009월 8월 광복절 특집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테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알려주고 윤동주의 시를 읽어줬다. 한국에 윤동주 기념관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곳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도 알려주며 시를 외우고 부모님 앞에서 해보라고 했다. 워낙 수행평가나 시에 관심이 없는 남학생들이라 동기 부여를 할 생각에 지필고사보다 30%를 차지하는 수행평가를 하는 것이 성적 올리기에 좋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니 이 역시 교육자로 부끄러운 말이었다.
2017년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 교토부 우지강변에 윤동주 시비가 건립되었고, ‘국제 윤동주 시낭송대회’ 10회로 러시아에선 러시아인과 고려인의 시낭송 대회가 열렸다. 평소 시를 읽지도 시집을 사지도 않으면서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광복절 기념 등 무슨 특정한 시기만 윤동주 시인을 상품으로 팔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역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