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감정을 앞세우면 일이 커진다

by N잡러

“그동안 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나?”


전화 상담을 하며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가해자 부모든 피해자 부모든 모두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가해자 부모가 뭐가 힘들어 ‘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의 문제이기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지극히 본능적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최우선으로 내 아이를 보호하고자 욕구가 있어서 어떻게든 학폭위도 열리지 않았으면 하고, 처분도 가볍게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인 상대 아이의 문제를 부각하고 싶고 원인 제공을 했으니 내 아이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피해자 부모님은 당연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됐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당사자인 아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화해하고 심지어 기억조차 못하지만, 부모에겐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은희가 운동장에서 공을 굴리고 성은이는 공을 발로 차는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은이가 은희의 손을 공과 함께 찼습니다. 이후 은희의 엄마는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고, 성은이의 엄마는 진료비를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가 은희의 엄마는 성장판을 다치진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성장판에 도움이 될 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의로 찼다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성은이의 엄마는 화가 났지만 결국 비싼 약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미성년자의 금전적 배상 문제는 부모의 몫이다 보니 은희와 성은이는 전혀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아무 문제없이 학교생활 잘했습니다.

성은이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그런 일 있었지? 기억나?” 했더니 “네. 그런 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 친구와는 어떻게 지냈어?” “음……. 그냥 잘 지냈는데요.”


또 다른 두 명의 초등학생은 서로 피, 가해자로 되어 학폭위가 열리고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가해자의 처분이 약하다고 여긴 피해자 부모는 재심을 하고, 그러다 쌍방 고소를 하게 되고 결국 민사까지 가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해자인 아이가 집으로 전화를 했답니다. “아빠, 동혁이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 같이 놀아도 돼?”라고요. 그 순간 아빠는 그동안 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까지 했나 하는 생각에 당황했고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대답은 “그래. 놀아.”라고 했답니다. 부모는 서로 법적 대응까지 갔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친구일 뿐입니다.


두 사례에서 보듯이 부모라 힘들 수밖에 없는 과정과 상황들. 가해자, 피해자 가릴 것 없이 힘듭니다. 내 아이를 대신해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건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습니다. 부모 성향도 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해결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상대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객관적인 강도가 아닌 주관적인 강도로 받습니다.

이건 당사자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관계가 회복되면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의 관계 회복을 위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금전적 배상으로 사건은 끝날 수는 있지만,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자녀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법적 절차가 달라지고 사건도 심각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러면 부모로 겪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받습니다. 부모도 연약한 존재이고 처음 겪는 일엔 당황스럽고 피하고만 싶어 집니다. 그러니 학교폭력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막는 것이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해도 부모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일을 더 어렵고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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