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면 된다
인생 처음으로 망해봤다. 그런데 타격이 너무 컸다. 쫄딱 망하고는 아무것도 못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무기력하게 방바닥에 붙어만 있었다. 무기력한데 그나마 봐줄 만했던 얼굴에 피부염이 생겨서 가렵고 아프고 상처가 생겼다. 밖에 나갈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언감생심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 몸이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나름' 호쾌하게 수영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내가 40년 넘게 수영을 선뜻 도전하지 못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컨대 사람들 앞에서 수영복을 못 입겠다든지, 코와 귀를 막지 않으면 물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든지, 결코 물에 뜰 수 없을 거라는 등이다. 우리 동네에 스포츠센터가 생기지 않았다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수영 등록 후에도 고민하느라 수영복도 사지 않았다. 시작했는데 결국 못하게 되면 어쩌지부터 덜 민망하려면 어떤 수영복을 골라야 하는지까지 밑도 끝도 없는 것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첫 수업에서 모든 것이 기우라는 걸 확인했다. 나 같은 초보가 수강생의 반 이상을 차지했고, 아무도 남의 몸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코치는 연신 '괜찮다, 안 죽는다'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냥' 시작하면 될 것을 괜한 에너지를 쏟았다 싶었다. 수영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거의 모든 일에 시작부터 지레 겁을 먹고 걱정을 안았다. 그냥 발을 넣어보면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 것을 쓸데없이 온몸에 힘을 줘서 시작할 때 기운이 확 빠져 있었다. 그러니 곧 지치고 포기도 빨랐다. '그냥'을 못했던 거다.
나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져 허우적거릴 때 수영을 만났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출발을 했다. 어느덧 수영 인생 2년째. 시작할 때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고 있다. 덕분에 하루 하나씩의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 작은 해냄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느껴본 사람은 안다. 그 사이에 나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몸에 힘이 빠져 조금 유연해졌고, 물속에서도 밖에서도 숨을 자유롭게 쉬며 사람들과 즐겁게 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만드는 과정 속에 있다. 남들에겐 쉬울 수 있는, 그러나 내게는 큰 도전이었던 나만의 '아가미 연대기' 과정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