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추억
최근 들어 등이며 허리 통증이 심하다. 세상엔 거저가 없다 당연한 결과다.
하루 중 청소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꼬박 책상과 한 몸이다. 운동을 한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중2인 둘째 때 손주를 같은 유치원 보내던 세 어르신과 매일 커피와 간식을 챙겨 오전 시간을 활용해 동네 학산을 다녔던 게 운동 다운 운동의 전부다
이후 매번 운동의 필요성을 깨닫고 몇 차례에 걸쳐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3달 동안 일주일 남짓이 전부, 결국 돈만 버렸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활용해 보리라 맘먹고는 서너 번 실천했을까 힘듦에 이내 꾀를 부리게 되더라. 청소는 매일 하는 거니 청소기를 밀면서 스트레칭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실천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짧아 별 효과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스트레칭 로프를 옆에 두고 의자에 앉은 채로 수시로 스트레칭을 한다. 6년째 식사시간, 청소시간, 강의 있는 날을 제외하곤 줄곧 이곳 아지트 서재다. 그동안 너무 혹사시켜서일까 올해 들어 부쩍 등과 허리가 말썽이다. 의자에 앉아서도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쳐 앉는다. 의자를 바꿔보기도 하고 가끔 물리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전혀 없다 보니 더 심해져 운동의 절실함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다.
얼마 전 시험을 앞두고 수업을 듣는 중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메달'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옛 추억이 떠올랐다. 사실 난 초등학교 고학년 때 육상 선수였다.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었고, 기억대로라면 초등학교 5, 6학년 때 스파이크 신고 100m를 13.7초까지 뛰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중학교가 4km 거리라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3년 내내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기본적인 운동이 되었고 또 많이 걸었다. 그런데 지금도 아이러니한 건 날아오는 공을 무서워 헸음에도 불구하고 핸드볼 선수를 시키셨다. 김영수 선생님이셨는데 갑자가 안부가 궁금해진다.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운동은 1년에 두 번, 사내 체육대회와 1박 2일 코스 가을 산행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어주고 당겨주며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좋았고, 민박집의 따뜻한 아랫목에 재밌는 얘기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캠프파이어, 목청껏 부르던 노래와 군고구마... 그때 그 시절 추억이 생생하다. 계룡산 입구에 가면 그때 그 시절 그분들이 떠오른다. 하O수, 구O모, 이O화, 고O환, 이O애, 배O화... 다들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정말 재미있었는데...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해를 거듭하면서 내가 왕선임쯤 되었을 때 이 팀장님께서 부르셨다. 이 팀장님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시급했고 당시 마라톤이 붐이었다. 팀장님은 사내 마라톤 동아리를 만드셨고, 한창 회원을 모집하던 중이셨다. "김대리, 김대리가 마라톤 클럽에 들어와야 후배들도 들어오지 않겠어? 마라톤클럽 활성화와 건강을 위해서 마라톤 동아리 가입 어때?" 당시 미혼에 특별히 핑계될 게 없었고 또 내 손에 후배들이 달렸다는 말씀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네"라는 말이 먼저 나갔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아차 싶었지만 달리기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 특별히 겁나는 건 없었다. 선배가 가입하니 후배들도 줄줄이 들어왔다. 그렇게 사내 마라톤클럽이 활성화되었다.
마라톤클럽 활동은 토요일 아침 7시에 신천 둔치에 모여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달리고 부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헤어지는 거였다. 근처 대백플라자 뒤편에 노부부가 하던 자그마한 식당이 있었는데 푸짐한 계란말이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추가 주문 시 천 원이었던 계란말이는 마라톤 동아리 회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테이블마다 추가 메뉴로 몇 번이나 시켰었다. 그렇게 매월 4번 주말에 달리고 대회를 앞두고는 추가로 연습 시간을 가졌다. 당시 우리는 버스를 대절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대구 마라톤을 비롯해 부산마라톤, 고성 이봉주 훈련코스, 춘천마라톤, 합천 벚꽃마라톤, 경주 동아마라톤, 강릉 경포 마라톤 등등 마라톤 대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나는 풀코스도 하프코스도 아닌 무리 없는 10km를 뛰었다. 하프나 풀코스를 뛰는 분들은 기록을 염두에 뒀지만 10km에 참가한 이들은 기록 신경 쓰지 않고 함께하고 완주한다는 느낌으로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참여한 마라톤대회, 메달이 수십 개였는데 이사하며 정리했다. 전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저께 블렌디드 연수과정 수료증을 파일에 보관하던 중 파일 마지막에 들어있는 몇 장의 마라톤 기록증을 보게 되었다. 이 또한 추억이니 담아본다.
대회 참가시 대부분 새벽에 출발하는데 계절에 상관없이 새벽엔 늘 한기가 느껴졌다. 동아리에서도 준비하지만 대회가 있을 때마다 난 솜씨 좋은 언니한테 부탁해 먹거리를 챙겼고, 한솥 가득 뜨근한 국물도 챙겼다. 2002년 12월, 엄마의 소원을 들어드렸다. 결혼을 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최고의 효도였다. 자동으로 마라톤과도 멀어졌다. 결혼 전 하프 한번 도전하려 했는데 결혼과 함께 결국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라톤을 하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니 다들 선크림 떡칠이다. 당시의 선크림은 찐득하니 상쾌하지 않았다. 그 느낌이 싫어 병아리 눈물만큼 흉내만 냈던 나, 그렇게 약하게 바르면 안 된다고 괜찮다는데도 막무가내, 순식간에 내 얼굴은 특수분장이라도 한 듯 뿌옇게 선크림으로 뒤덮였다. 알다시피 선크림을 바르면 몇 배로 덥다. 과하게 바른 선크림에 비 오듯 하는 땀은 눈썹을 타고 눈으로 들어갔고 순간 눈이 빠지는 고통을 느꼈다. 달리다가 멈추기를 몇 번이었다.
요즘은 사계절 다 기초 제품처럼 챙겨 바르는 선크림이지만 그날 이후 난 선크림을 멀리했다. 선크림 안 바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닦달로 바르기 시작한 지 2년 남짓 되었을까 그 정도다. 그것도 외출할 때만 바르는 정도이다. 그나마 요즘 선크림은 매트하게 나와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피부는 돌본 만큼이라는데 나처럼 돌보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나가지 않는 요즘은 세수하고 닦지 않은 채 스킨 하나가 전부다. 겨울이면 스킨, 로션(또는 크림), 비비가 전부다. 그 흔한 아이크림도 패스다. 크림도 챙겨 바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선크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이후에는 줄곧 맨얼굴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보기 드물게 이마에 얼룩덜룩 기미가 생겼다. 고민이었다. 화장으로도 커버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첫째 출산 후 깨끗이 사라졌다. 2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녹차의 주성분인 카테킨으로 만든 모 제약회사 제품을 3개월간 복용했다. 조리원으로 찾아온 제약회사 직원에게 40여만 원선의 식품을 할부로 구입했고 한동안 지로영수증을 받았다. 카테킨 성분이 몸속 노폐물을 걸러내서인지 낯빛이 맑아졌고 이마의 기미도 사라졌다.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건 남편의 양말이다. 그때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방법은 이거였다. 남편이 신었던 양말로 기미 있는 곳을 쓱쓱 문지르면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아무튼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었다. 후자보다 전자 덕분이겠지? 그 일 이후 녹차가 좋다는걸 알았지만 여전히 잘 마시지는 않는다. 남편은 물처럼 마시는 녹차 마니아다. 아무튼 첫째 출산 이후 한동안 피부 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관리하지 않은 티가 팍팍 난다. 역시 가꿔야 한다. 무슨 일이든 공을 들여야 한다.
친정엄마는 볼 때마다 노래를 부른다. "야야, 이서방은 점점 젊어지는데 너도 좀 가꾸고 해." 안 그래도 젊은 이서방이 점점 더 젊어지고 있으니 곧 큰누나뻘쯤 돼 보이는 것도 시간문제다.
주변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다. 작게 걷기부터 시작했다는 분들도 많다. 나도 더 늦기 전에 우선순위를 올려 운동, 작게라도 시작해야겠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아파트 헬스장에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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