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엄마, 엄마도 나 안 보고 싶을 때 있지? 엄마도 재밌는 거 할 땐 내 생각 안 나지"
엄마가 안 보고 싶었다고 말하기 미안해서인지 아이는 계속 말을 돌린다. 그러다 마침 생각이 났는지 툭 던지는 말.
"엄마, 근데, 유치원서 책 읽을 땐 엄마 생각이나. 책 읽을 때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엄마가 안 보고 싶어서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내심 감동했다. 책 읽을 때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니.... 딸에게 이런 고백을 받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 여섯 살인 첫째는 언젠가 스스로 한글을 떼더니, 이제는 스스로 책을 즐겨 읽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일일이 소리 내어 읽어가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혼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이 인생에서의 대단한 사건이다.(사진 출처 unsplash)
"소리 내지 않고 마음으로 읽어볼래? 그러면 많이 읽어도 힘들지 않고 더 오래 읽을 수 있어."
그러자 금세 앉은자리에서 꽤 글밥 있는 책을 묵묵히 읽어낸다.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엄마라는 연결 고리 없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거나 가공됨 없이 세상을 스스로 배우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아이의 인생에 있어 대단한 사건이다. 엄마가 선택해서 보여주던 정보, 엄마의 반응으로 느껴오던 세상을 이젠 아이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게 된 것이다. (책 하나 혼자 읽은 게 그리 대수냐고, 호들갑 떤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여기던 일상의 첫 시작이 얼마나 신기하고, 자랑스러운지를 엄마가 되면서 배워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래오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와 당당하게 엄마 무릎에 앉는 그 귀여운 모습을 포기할 수 없다. 내 품 안에 쏙 기댄 아이의 따스한 등으로 내 목소리가 울리는 그 느낌,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하는 아이의 숨소리의 편안한 느낌을 포기할 수 없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는 감정의 교감으로 아이와 나는 더 끈끈해진다. 서로의 목소리와 반응에만 집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와 '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 (우치다 린타로)'의 그림책을 읽고 나서 물었다.
"엄마가 된다는 게 뭘까?"
그러자 아이는 서슴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행복한 거!"
아이의 눈에 나는 행복한 엄마로 보였던 걸까? 어찌 아이 둘을 키워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하지만 행복한 순간순간이 모여 내 삶이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살아간다. 삶은 순간의 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살을 맞대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순간순간 나는 행복하다.
아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햇살과 바람 소리에 행복을 느끼는 부모, 가족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부모,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노래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부모, 그 부모를 보는 아이는 행복이 뭔지 저절로 배우게 된다. 아니 온몸으로 행복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