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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Mar 09. 2020

그 언젠가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것

Yes, World. A Mosaic of Meditation 


하루 종일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은커녕 TV도 없던 시절이라면 사람들은 하루 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쟁, 천재지변처럼 내 의지를 벗어난 세상의 소란이 일어나면 불안한 마음에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았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지금 내 휴대폰 화면은 계속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그에 관한 뉴스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로 3일째, 아이들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즐거운 외출이었던 도서관 나들이도 오늘은 아이들 아빠 혼자 다녀와야만 했다. 나갔다 온 아빠가 서둘러 손을 씻고, 책이 가득 찬 가방을 풀어내자 두 아이들이 달려든다. 마치 달콤한 과자, 초콜릿이 가득 찬 과자 꾸러미를 열어보듯 신나 하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렇게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답답한 마스크를 끼고 불안한 마음으로 외출하느니, 집이 낫겠다 싶어 외출을 줄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바깥 놀이 시간도 사라졌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유난히 산책을 좋아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공원에 가면, 각자 마음에 맞는 나뭇가지 하나씩 찾아들고 산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흙 속에 있는 돌멩이를 찾아 파내기 시작한다. 땅 속 깊숙이, 그리고 돌멩이의 숨겨진 부분이 크면 클수록, 아이들은  짜릿함을 느낀다. "엄마, 공룡 알인가 봐!" 하며 숨겨진 공룡 알을 파헤친다. 땅 속 깊이깊이 내려갈수록 아이들은 더욱 진지한 고고학자가 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나뭇잎, 도토리라도 발견하면, 귀한 보물인 양 주머니에 꼭꼭 넣어둔다. 물론 금세 그 귀한 보물들을 잊어버리긴 하지만... 봄이 되면 아이들의 산책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쉽게 만날 수 있는 민들레 홀씨는 아이들이 신나는 놀잇감 중 하나다. 양 볼 가득 바람을 모으고 있는 힘껏 '후' 하고 날려 보낸다. 하늘하늘 바람에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들을 보며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노란 민들레 꽃을 피우기 위한 아이들만의 소명이라도 된 듯 자못 열심이다. 겨우내 단단하게 닫혀있던 꽃눈, 잎눈이 열리며 조금씩 보드라운 꽃, 잎을 내어내는 모습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보물 찾기다.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꽃눈처럼 기지개를 켠다.


평범한 날이여, 그대의 귀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여라  (Photo by Nanda Green on Unsplash)


“Normal day, let me be aware of the treasure you are. (평범한 날이여, 그대의 귀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여라) Let me learn from you, love you, bless you before you depart. Let me not pass you by in quest of some rare and perfect tomorrow. Let me hold you while I may, for it may not always be so. One day I shall dig my nails into the earth, or bury my face in the pillow, or stretch myself taut, or raise my hands to the sky and want, more than all the world, your return.”

(Yes, World. A Mosaic of Meditation  / Mary Jean Irion)


당연한 일상이, 곁에 있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Mary J. Irion의 시처럼, 누군가가 전쟁 가운데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별과 외로움 등의 어려움 앞에서 땅에 손을 묻거나,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간절히 원했던 '일상'일 것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파괴된 지금,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닫고 있다.

 

따뜻한 창가 아래 있던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 누가 이겼어?"

"응?"

"오늘... 봄이 이겼어, 겨울이 이겼어?"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 사이에서, 겨울과 봄이 서로 싸우는데, 어떤 날은 겨울이 이겨서 춥고, 또 어떤 날은 봄이 이겨서 따뜻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나 보다.


"음.. 오늘은 봄이 이겼나 봐. 날이 따뜻하다.."

"그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산책할 수 있겠다!"


아이는 벌써부터 따뜻한 봄 산책에 들떠있다. 유난히 길고 답답했던 이 겨울도 어느새 끝나가고 있다.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그 날, 아이들과 나란히 손잡고 산책을 가고 싶다. 이 답답한 마스크는 벗어던지고...

 


/덧붙이는 말/

위에서 인용한 Mary Jean Irion의 시는 그녀의 두 페이지 짜리 에세이의 마지막 문단이에요. 위의 인용된 문단과 함께 앞 문단을 읽어보는 걸 추천해요.

http://tinalewisrowe.com/2012/04/23/normal-day-was-written-by-mary-jean-irion/


대표 사진 출처 Photo by Lāsma Artma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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