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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Apr 07. 2020

마음 한 켠이 간질간질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공지영

"어머나, 벌써 벚꽃이 다 피었네~"


봄이 와버렸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포근한 잠자리에서 조금 뭉기적 거리기도 하고, 천천히 기지개도 켜고 슬금슬금 기어 나와야 하는데, 누군가 곤히 자던 나의 이불을 확 들춰내고, 엉덩이를  찰싹 때린 느낌이다. 봄이라고?


봄이 올 것 같긴 했다. 침대 밖이 더 이상 춥지도 않았고, 추위에 움츠려있던 베란다의 화분들도 초록초록 생기를 찾아가는 듯했다. '곧 봄이 오겠구나' 하고만 생각했지, 정말 봄이 온 줄은 몰랐었다. 나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게 하마터면 나의 봄마저 잠식당할 뻔했다. 벚꽃이 알려주지 않았면 말이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하나씩 씌워주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빼빼로 하나를 가방 속에 챙겨 넣고...(물론 손소독제와 항균 티슈도 챙겼다.) 아이들도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에 마음도 가벼워졌는지, 연신 통통거리며 뛰어다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올해 네 살이 된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벚꽃 인양,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꽃잎들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물론 아이가 어릴 적, 아이를 업고, 안고, 차에 태우고 벚꽃을 보여줬더랬다. 하지만, 이제부터 세상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네 살 아이의 기억 속에선 오늘이 첫 벚꽃이다. 하얀 꽃잎이 눈처럼 하늘하늘 떨어지는 모습이 얼마나 새롭고 신기할까. 입 안의 빼빼로만큼이나 달콤한 느낌일까. 우리 셋은 그렇게 빼빼로를 하나씩 들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벚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만의 짧은 봄 신고식을 치렀다.  


4월이 되었다. 4월(April)은 열다(to open)라는 뜻의 라틴어 aprili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무의 꽃눈이 열리고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4월은 미와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새로운 생명과 사랑의 시작을 기원하며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기독교의 부활절(Easter)도 4월에 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3일 만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미국의 원주민 중 하나인 블랙피트족은 4월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4월은 인종, 지역, 시대를 넘어 모두에게 기쁨이 시작되는 달인가 보다.


... 그러나 지난겨울 얼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린 화분에서 너무나 연한 초록빛 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지난가을 말라죽은 줄 알았던 포도나무의 뿌리에서 연녹색 새순이 돋고 있습니다. J, 겨울 뒤에 봄이 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모든 부드러운 , 약한 것이 매서운 바람 속으로 돋아나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공지영 )


시작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봄이 시작되었다. (Photo by Danielle MacInnes on Unsplash)


아이들은 여전히 바깥 외출을 삼가고 있고, 구호식품처럼 문 밖에 놓여있는 택배 박스를 뜯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음 한 켠이 간질간질하다.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무언가 좋은 일이 시작될 것 같은 그런 설렘 말이다. 시작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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