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데어 Apr 10. 2020

오늘을 사는 아이들

시간의 놀라운 발견 / 슈테판 클라인

 아들 : 아빠, 오늘 회사가?

아빠 : 아니, 오늘은 안가~

아들 : 내일은 회사가?

아빠 : 응, 내일은 회사가.


(다음날 아침)

아들 : 아빠, 오늘 회사가?

아빠 : 응

아들 :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오늘 안 간댔잖아~~~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아빠와 이야기하다 둘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우는 아이 앞에 서있는 아빠는 난감하다.


네 살 아이의 시간은 참 신기하다. 이제 막 일어나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면 엄마에게 묻는다. "이제 밤이야? 잘 꺼야?" 오후 내내 엄마와 한참을 놀다가도 잠시 엄마가 안 보이면, 쫓아와서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아직 엄마랑 한 번도 못 놀았는데.. 언제 놀아?" 분명 장거리 여행을 떠나면서 '오늘은 차를 오래 타야 해"라고 일러줬는데도, 목적지에 가기까지 '아직 도착 안 했어?"를 몇 번이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선형적인 시간에 얽혀 있지 않다. 어제 일이 오늘 같고, 다가올 내일도 '오늘'로 보내는 아이들에겐 오직 '오늘'만이 존재한다. 물론, 아직 시간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생기는 해프닝이지만, 오직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가끔은 부러울 때가 있다.


나의 오늘은 '어제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까?', '어젯밤에 아이가 기침을 하던데, 오늘 밤도 기침 때문에 잠을 푹 못 자면 어쩌지?' 하는 엄마의 사소한 걱정에서부터, 재테크, 앞으로의 일과 계획 같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재깍재깍.. 분명 시계는 현재를 가리키고 있지만, 과연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 걸까. 과거와 미래가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일상을 보내면서  무엇이 머리를 스쳐 가는지를 한 번 관찰해보라. 갖가지 것들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현재뿐 아니라 우리는 미처 하지 못한 일(자동차를 수리해야 하는데....)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을 기뻐하는 동시에 걱정(내일 저녁에 있을 소개팅 때문에 떨려!)하며,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분개(상사가 나를 노예처럼 부려먹어!) 한다. 그동안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런 감정들과 생각들 사이사이에 간간이 빛을 발할 뿐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간은 우리가 부재한 가운데 흘러간다. 현재는 낯설다. 우리는 스스로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과거와 미래를 훨씬 쉽게 경험한다. 몇 분만이라도 그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커피 향을 음미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시간의 놀라운 발견 / 슈테판 클라인)


아이들은 '오늘'을 산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아이들과 바다 여행을 다녀왔다. 돗자리 하나, 모래놀이를 위한 조그만 삽과 그릇 몇 개를 챙겼다. 매번 새로운 포말을 밀려오는 파도와 끝없는 모래뿐인 이 곳에서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저 땅을 깊이깊이 파기도 하고, 성을 만들고 길을 만들었다. 그러다 모래가 따뜻했는지, 모래 위에 누워서 뒹굴뒹굴도 해본다. 엉덩이를 질질 끌며 모래 미끄럼틀을 만들기도 했다. 또 한참을 조개를 찾아 모래를 뒤졌고 집으로 가져간다며 양동이 하나 가득 조개를 가득 채워왔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믿을 수 없지만) 세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얘기하자마자 아이들이 외쳤다. "좀만 더 놀고!" 심지어는 "아직 조금밖에 못 놀았어!" 하며 졸라댄다. '조금밖에' 라니!! 아이들의 몰입은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그 세 시간은 정말 '조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지금 기세라면 앞으로 두세 시간은 더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히 무얼 더 해 줄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더 주워진다면 아이들은 다시 땅을 파고, 모래를 뒤지고, 모래성을 만들 것이다.


잠들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오늘 하루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별다른 투정도 없이, 기분 좋게 잠들 준비를 하고, '설마?' 하는 잠깐의 시간에 잠이 들어버린다.  실컷 모래 놀이를 하고 온 날도 아이들의 밤은 평온했다. 오늘 '현재'에 머물며 하루를 꽉꽉 채웠다는 만족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 이렇게 현재를 살아낸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훗날 아이들의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돌아보면,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인식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 헤어 나오지 못했고, 미래의 계획에 오늘을 희생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듯하다. 오늘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과거가 된고, 그 기억으로 내일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나의 오늘은 내가 만드는 과거이고, 내가 만나는 미래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의 나의 상황, 기분이 과거를 '추억'으로 여길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만 여길지 결정한다. 미래도 마찬가지일 터. 오늘이 행복한 사람은 '어제'도 행복했고, '내일'도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바로 '지금' 행복해야 한다.  


쫓기는 기분이나 평온한 마음이 드는 것도, 과거를 회상하며 풍요로움을 느끼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외부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드라마는 우리 머릿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드라마의 연출자이다. (시간의 놀라운 발견 / 슈테판 클라인)

작가의 이전글 마음 한 켠이 간질간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