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아이의 등원 길. 나무는 저마다 노란빛 붉은빛을 내고 있고, 색 바랜 낙엽들이 공원 가득 떨어져 있다.
"엄마, 눈이 내린다!!!"
이따금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랗고 빨간 '눈'이 흔들리며 떨어진다. 아이의 눈에도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이 마냥 예쁜가 보다. 이렇게 예쁜 가을이 절정에 다다를 때, 성큼 겨울이 다가온다. 부지런히 눈으로, 마음으로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울긋불긋한 풍경들을 저장해놓는다.
겨우내 꼭꼭 쥐고 있었던 꽃눈을 펼치고, 초록 초록한 여린 잎을 내어내는 봄, 그리고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소나기를 맞으며 쭉쭉 잎을 뻗어가며 자라나는 여름, 넉넉하게 무르익어 내어놓는 열매들과 깊이깊이 물든 단풍들로 풍성하고 여유로운 가을을 지나 이제 겨울로 향해 가고 있다. 나무들은 곧 모든 잎사귀들을 떨구고 긴긴 겨울잠을 준비한다.
중년의 문턱에 선 나를 닮아서일까. 가을의 절정을 지나고 겨울의 문턱 앞에 선 지금, 후드득 속절없이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문득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아..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이었다. '젊음=행복'이 아님을 몸으로 배웠으면서도, '나이 듦'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닌가 보다.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또 같은 고민과 슬픔을 안고 바둥거리겠지. 그럼에도 다시는 젊음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속절없음'이 속상하기만 하다. 여기에 세월과 함께 바래지는 찬란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한 몫한다. 나에게 이 계절은 뭔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서서히 스며드는 계절이다.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 중에서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 '알사탕'에서 단풍색을 닮은 알사탕을 먹은 동동이는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의 소리를 듣는다.
"안녕, 안녕, 안녕...."
이별 인사를 하며 떨어지는 단풍잎들이 온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전 페이지에서 동동이가 들었던 소리가 보고 싶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지금 동동이가 마주한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이별이었을지도 모른다. 춤추듯 너울너울 찬란한 비행을 마친 단풍잎들은 동동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어쩌면 내가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보며 떠올린 이 계절의 슬픔은 사라지는 수많은 관계, 시간, 추억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할머니와의 이별을 겪고 낙엽을 마주하는 동동이처럼 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성장호르몬은 가지, 줄기, 뿌리의 끝부분에서 만들어지는데, 성장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진단다. 반면 성장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가지, 줄기 가까이에 붙은 잎은 가장 늦게 잎이 떨어지고, 봄이 되면 그 자리에 잎이 가장 먼저 돋아난다. 더 가까왔던, 더 많이 영양분을 주었던 잎이 더 오래 남아있고, 더 빨리 새로운 잎을 낸다는 말이다.
다져가야하는 관계가 있고, 겪어내야만 하는 이별이 있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애쓸수록 관계는 더 오래 남고, 이별 후에는 또 새로운 만남이 찾아오니말이다. 나의 눈길, 손길이 가장 많이 가는 관계는 쉬이 떨어지지 않고, 또 때가 되면 새로운 잎이 돋아난다.
동화책 '알사탕'의 마지막 페이지는 "나랑 같이 놀래?"라고 이야기하는 동동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떨어지는 단풍들의 이별 인사를 듣고 난 바로 다음 장면이다. 아쉬움과 슬픔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장면이 나는 참 좋았다. 혼자 놀기 좋아하고, 내성적인 동동이가 어느 만치 자란 걸까. 동동이가 힘을 내 새로운 만남을 열었던 것처럼, 동동이에게 흩뿌려지듯 떨어졌던 낙엽이 떨어진 그 자리에 따스한 햇빛이 머무는 날 또다시 여린 잎들이 돋아날 것이다.계절이 주는 위로리라.
이 계절, 사라져 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가족, 친구들을 떠올린다. 더욱 사랑하고, 그 온기를 오래오래 유지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좀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하는 계절이다.
이 계절은 그렇게 나에게 감사와 기다림을 알려준다. 올 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 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