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by 김수혁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는 동시에 각각의 다른 의미를 주장하고 있었죠. 운 좋게도 서로의 말이 엇나간다는 것을 둘 중 한 명이 알아챘고, 평행을 그리던 각자를 서로에게 닿게 할 수 있었습니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였습니다. 쉬지 않고 맥락을 이어 만드는 발화와는 달리,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해석은 여유만 있다면 되어서요. 동시에 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제 앞에서 등 돌리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당신을 칭할 때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 도시를 가득 채운 외로운 군중 속에서, 우리는 대화로 매개되어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를 위한 규칙을 하나 새겼습니다. 각자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 가려져 있으니, 화자든 청자든 간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봐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환한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 할 게 없었으니까요. 흐릿한 기억 속에 저는, 말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이어 가곤 했습니다. 지나가 버린 대부분의 실패에 지치곤 했지만, 간혹 마주치는 순간의 행복에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겐 눈앞의 환한 모습이 살아갈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가 환희만을 담으며 달리기만 했더라면, 여기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는 금방 불거졌습니다. 제게 당연한 일은 당신에겐 당연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정한 말 상대가 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말은 화자의 세계관 외의 모든 것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제 모든 것은 소외된 나머지에 속해 있었고, 잔인한 당신은 발화로써 전부 휩쓸어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말 상대의 미소를 위해 새긴 제 규칙이, 제 세계관을 짓누르는 이를 미워하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 당신을 밀어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새겨진 규칙은 바램의 대상을 넘어설 수 없었기에, 열렬한 화자에게서 미소를 앗아갈 수 없었기에. 이런 제가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차라리 제가 환희에 가득 차 웃을 수 있었더라면. 환하게 당신을 비출 수라도 있었더라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제 젊은 날은 여러 불행에 휩싸여 있었고, 머물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둠 속이었습니다. 지나온 가족의 죽음이 만든 침잠에, 닿을 수 없는 꿈 밖의 좌절에, 당신이 수없이 건네준 절망 속에, 말없이 웅크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게 말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는 찬란히 빛나는 것들에 있다고. 어두운 온 세상을 밝게 빛내는 희망에,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행복에, 서로를 이해해 주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사랑에 있다고. 저는 그중 아무도 가지지 못했고, 당신의 절대는 날카로운 섬광이 되어 제 살점을 꿰뚫곤 했습니다.


당신은 그 신성을 말로써 무참히도 박아대었습니다. 전혀 나아갈 수 없는 칠흑만을 앞둔 제게, 당신은 닿을 수 없는 희망을 말하며 찔러대곤 했습니다. 온갖 불행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제게, 박탈당한 행복이 전부라며 후벼 파곤 했습니다. 무정한 이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던 제게, 당신은 어찌 사랑하지 않냐며 단죄를 내리치곤 했습니다. 제 주변의 세상은 온갖 밝은 것들로만 가득 차 있었고, 당신은 떨어지는 제 손발을 다시 못 박곤 했습니다. 이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차라리 원망과 질책을 뱉어내기라도 했었다면. 하지만 저는 당신 앞에서 입을 열 수 없었고, 가능한 건 저 멀리 도망치는 것뿐이었습니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당신이 기쁘기만 바라왔던 저는, 그때까지 아무런 갈등도 소화해 내지 못해 피하곤 했었습니다. 그저 이 모든 세상에 맞춰오긴 했던 저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아 공허만을 지녀왔었습니다. 해온 것이라곤 그저 끌려다니는 것뿐이었던 저는, 자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백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나마 당신의 미소로 채우던 날들에 위안을 얻곤 했었지만, 어느새 그것들은 제 뒤로 지나가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매일 조여오는 고독이 제 주변을 채우긴 했습니다만, 당신이 떠난 빈자리를 갈구하는 비명 그 이상은 아니였습니다. 저란 인간에게는 희구할 것 그 어느 것조차 보여지지 않았으며, 말없이 꿰뚫린 채 핏빛 끈적함을 밟아 나가야만 했습니다.




운명. 참으로 적절하지 않습니까. 한때는 이를 운명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며, 도저히 피할 수 없고 짓누르는 걸 뭉뚱그리곤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는 게 없었으니, 말더듬이에겐 탁월한 지칭이었고요. 나름의 용어 선택에 완벽함을 떠올리곤 했지만, 실상은 구체화하지 않아 둥둥 떠다니는 것뿐이었습니다. 무엇이 제 자신을 이리 부르라 추동하는지, 어떤 날들에 이들을 되뇌었는지, 어떻게 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그래도 놓으려 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아두려 했으니, 이를 젊은 날의 반항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지칭이라도, 어떻게든 제 자신을 대변해 주길 바란 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떠난 빈자리에 서서, 제 자신을 남김없이 증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 모습이 보이던 여러 이야기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이 정한 금기를 부수어, 무참하게 내팽개쳐진 어느 운명을 그린 신화이자 서사시였습니다.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출생이라는 저주로 시작되었고, 세상 속 모든 당신들에 향한 기대를 반드시 박탈당해야 했으며, 그마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해 쏟아지는 절규와 함께하던, 그런 제 운명과 닮아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치기만 하던 저와는 달리, 무너지는 운명을 어떻게든 마주하려 했습니다. 어떤 이는 가족 같은 동료의 시체로 이루어진 진홍빛 진창 속에서, 지옥뿐인 삶을 살아내려 악착같이 눈앞의 악마들을 베어내곤 했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뿐인 연인의 죽음을 어느 신에게 되돌려 받기 위해,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야 하는 여정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저 앞에 허락된 게 고독과 고통뿐이라도, 지독한 상흔을 남기는 궤적은 제 앞에서 끊임없이 새겨지곤 했습니다. 온갖 당신에게 시달리던 때와 달리, 이들의 길을 지켜보며 유일한 공감이란 것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니 제겐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그저 제 자신을 밀어내는 무언가를 어스름히 느낀 것뿐이었고, 눈 앞에 펼쳐진 건 오롯이 펼쳐진 칠흑과 불투명한 제 자신 뿐이었으니. 이 눈만 뜬 장님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반복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하고 죽지 못해 버텨 고만 있는. 그렇게 삶을 연명하며 수많은 당신들에게 밀려다녔고, 온갖 것들 사이를 부유하며 떠돌아다니기만 했습니다. 아무런 말 없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살다 보니 나름의 위안거리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널린 수많은 텍스트 중 하나를 골라 이를 삼켜내어 자신의 뜻을 찾는 일. 그 속의 깊숙이 박힌 의미를 수많은 당신과 함께 나누는 일. 그럼으로써 그 무리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확립하고 결론짓는 일. 뭐 이런 것들 말입니다. 그때도 여전히 입을 떼는 건 쉽지 않았지만, 단지 살기만 하는 것보다는 박탈감이 덜해서 좋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리 속에선 세상이 정해준 절대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던 것 같습니다. 얕은 말이라는 체계에만 갇혀 있지 않고, 파고들어야 할 텍스트의 주변부를 서성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당신과 제가 진실된 속내를 나눌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떠다니기만 하던 제가 잠시나마 소속된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처음으로 자리를 꿰차고 싶다고 생각하던 곳. 거기서부터 제 운명은 드러나기 시작했고, 오래 지녀온 제 몰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그 끔찍한 흔적들에 뒤덮인 모습을.


썩어 문드러진 동일시의 열망.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독자에게 계속해서 읽히며 품어온 제 자신을 비추어 주었고, 반복되며 보이는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너무나 기괴했고, 이를 말로써 전하기에는 청자 또한 괴로울 것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뒤틀린 인간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여러 당신들이 제 살점을 꿰뚫어 놓은 이 세상의 밝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똑똑히 지켜봐야 했고, 도무지 이 감상을 당신께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함께하고 싶은 이에게 이런 말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제가 당신께 조금이라도 원망 섞인 말을 건네겠습니까. 저는 감히 지니고 있던 그로테스크를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고, 소속되고 싶은 곳에서도 여전히 입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이 들어줄지 말지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며, 제게 당신이 들어줄 사람이 아니란 게 중요했습니다. 그 청자가 될 수 없는 화자는 전혀 닿을 수 없는 상대로 느껴졌고, 나와 당신이 다르다는 최초의 구분은 또 다른 고독으로 반복되었습니다.


낙원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도, 마주 서서 머무른 곳에도. 그러니 저는 해야 할 것을 해야 했습니다. 이 지리멸렬하게도 저를 괴롭혀 온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던가, 살아 있음으로 현존해 온 이 모든 고통을 종식시키게 죽어버리던가. 그 닮고 싶었던 지옥을 마주하던 이미지는 이미 수많은 좌절에 바래져 있었고, 저는 살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죽어버렸으면 하고 되뇌이곤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종식되어 내게도 평화가 찾아온다면. 저기 앞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사는 당신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면. 당연하게도 저는 운명의 끈을 쉽사리 끊을 용기가 없었고,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는 비극을 여실히 느끼곤 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매번 달랐습니다. 어떤 때는 긍정하는 절규가 승리했으며, 어떤 때는 죽음이란 안식이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엎치락뒤치락하며 매일매일의 저를 뒤흔들었고, 이 휘말린 인간은 죽지 못해 그 전장에 머물러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하나의 염원이 피어났습니다. 죽지 못하니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이 의미 없는 반복을 그만하고 싶다고. 제 모든 것들을 찍어 누르는 충동을 향해, 저 찾아오지 않을 평화의 순간을 요구하고 싶다고. 영원히 지리멸렬할 괴로움에 정면으로 맞서서, 이 지독한 운명을 남김없이 끌어안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자신을 극복해라. 가당치도 않은 경구입니다. 각각의 인간이 지닌 운명이란 이미 정해져 버려 떨쳐낼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를 뛰어넘어 무언가를 하겠습니까? 아, 가능한 방법이 있긴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비약하고 왜곡해서 지녀온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 수많은 자동인형의 행태를 모방해 자기 자신을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 하지만 그 도피의 수단은 저에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제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려서,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깊숙이 파고들어 제 자신에 대해 남김없이 파내야 했습니다. 남겨진 건 제 운명을 향한 의무를 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계점은 명확했습니다. 타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하나씩 모아갔지만, 제 모습을 완전히 비추기엔 불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조악한 거울에 비친 조각들을 모아갔지만, 서로 잘 붙지 않아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붙여보려 해도 그들 사이 사이엔 제 숨결이 수없이 불어, 서로 다른 게 서로에게 붙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게 필요한건, 이 운명의 조각들을 하나로 완성시켜 제 자신의 상징을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여태껏 내보내지 못한 제 말을 씀으로써, 어지러이 놓여진 파편들을 붙여야만 했습니다.


자연스레 이끌렸습니다. 잠시 동안 읽어온 텍스트를 다시 써 내리는 것에. 모든 당신들과는 분리되어 있었고, 주어진 운명 속에서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누군가 텍스트는 거짓을 지어내기 가장 쉬운 방법이라 했지만, 제게는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였습니다. 여태 제 속의 의미를 꺼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뜬구름 같은 목적 외의 상세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길도 아니였습니다. 이미 수많은 조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니, 기술 같은 것들은 모두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능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어느 탁월한 표현 방식과 아름다운 추상 구조들이 아니라, 제 안에 위치한 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녀왔던 운명을 아무런 기만과 왜곡 없이, 병적으로 파고들며 쓰고 고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믿지 못해 스스로 파고들어야 했던, 어느 편집증 환자에게는 아주 적절한 일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제 내면은 왜 이리도 당신들과 다르게 괴이한 건지. 어쩌다가 괴로워 도망치는 걸 반복해야만 했는지. 그래서 자신조차 믿지 못한 이는 흐트러진 기억과 지리멸렬했던 운명을 적어나갔습니다. 처음으론 가장 오래 의심해 온 낳아준 이의 죽음과 그 주변부를 감싸고 있었던 여러 불행이었습니다. 잔인했습니다. 태어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어느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생이 결정된다는 게. 물려받은 사랑에 따라 정신의 유복함이 달라진다는 게. 그렇지만 각각의 운명은 그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누구나 살아있다면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고,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주어진 운명을 남김없이 마주하는 것 뿐. 그 후로도 태어남으로써의 환경에 대해, 그 최초의 인식인 불행에 대해 묘사하곤 했습니다. 슬픈 집에서 가지고 나온 것들에 대하여. 보듬어지지 못한 구성원들에 대하여. 잊혀지지 않는 여러 이별의 장면들을 잊혀질 때까지 반복하며, 비추어진 기억 조각들로 형상을 맞추어갔습니다.


계속해서 토해냈습니다. 당신에게 말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겐 괴로워 보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 토사물들은 거의 대부분 고통의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겐 해소의 과정이었습니다. 지나온 운명은 모두 삼켜내야 하고, 도저히 말할 수 없던 것들을 꺼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편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에게 제 어둠을 꺼낼 수 없었고, 적기만 할 땐 청자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향한 조각들도 몇몇 꺼내곤 했습니다. 제 살점을 수없이 꿰뚫은 찬란한 신성에 관하여. 제 일터에서 행해진 수많은 기만과 방임에 관하여. 버려져서 벼려진 이 모든 것들이 커다란 괴물로 나타난 것에 대하여. 이 역시도 잔인하다 생각했습니다. 제 앞을 지나간 수많은 당신들은 아무렇지 않다며 넘어가곤 했고, 제가 본 이 세상의 그로테스크는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 제 오물을 튀게 할 순 없었고, 이 모든 것들이 추상과 구조의 문제라 결론지으며 피해 가곤 했습니다.


일상 언어의 권위를 피해야만 했습니다. 누군가는 만듦새를 위해 그래야 한다 말했고, 누군가는 미적 감각의 충족을 위해 그래야 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서 나온 표현들은 모두 강박적인 집착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들어온 수많은 당신의 말들은 그저 가볍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칭했습니다. 당신은 표준이니 실사용이니 하며, 화자가 행한 모든 발화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겐 이렇게 해석되었습니다. 이 뱉어진 말들 속에 담겨진 세계관은 진리이고, 이 진리는 불변이니 청자는 듣는다는 압제에 필히 굴복해야 한다고. 그러니 제게 당신은 의심하지 않는 건강한 인간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고, 이 모든 가정 속에서 저는 소외와 분리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파괴의 뉘앙스를 감히 당신 앞에 늘어놓을 수 없었고, 표현하지 않으면 여러 기억이 되감겨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로써 꿰뚫리던, 반드시 도망쳐야 했던. 그래서 저도 모르게 돌아가곤 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당신에게 표현할 수 없으니 제 자신이라도 당신과 다른 길을 걷도록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요구사항을 만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슬픈 집으로써의 첫 장면과 이어지는 비참의 묘사. 지독한 운명과 그 잔인함을 삼켜내기 위한 의도. 당신께 기초한 소외와 분리를 떠올리지 않는 형식. 누군가는 보여지는 예술을 하고 싶어 했지만, 제게는 제 자신을 의미할 것을 그려내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운명을 알아 줄 수 없었으니, 편집증의 대상이 제 자신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아온 조각들과 누락된 의미들을 붙여왔고, 그 부분 부분이 모여들어 하나의 초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스스로 입을 막아 비틀린 인간이 비춰지는.




한동안은 잊고 있었습니다. 제 지난날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나니, 말하지 못함의 괴로움이 해소됨과 동시에 어느 당신의 이해를 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쁘게 지내곤 했습니다. 시달리던 운명을 잠시 삼켜냈다는 것에. 여태 닿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 닿았다는 것에. 더 이상의 남겨진 컴플렉스는 없다 여겼고, 앞으로 무엇을 묘사할지 고민하곤 했습니다. 더 이상 표현할 게 잘 떠오르지 않았고, 여유가 생겨 당신들과 쉽게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제 쓰기의 습관은 편집증에 가까웠다고. 표현하지 않을 금기를 깨버리며, 내세우지 않을 것을 끝까지 내세우니 말입니다. 그 화두로 떠오른 습관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어딘가에 제 글을 소개하려 적었던 짤막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말하기 위하여 씁니다.“


써왔던 장광설들이 모두 한 점으로 되감겼습니다. 초상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은 제 안에 머무르던 것이었고, 이 편집증의 습관은 모두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자 했고, 그 억압된 결과가 제 초상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뱉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 저는 당신께 제 오물이 튀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 어둠이 당신을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 세계의 말들로 당신이 소외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가 수없이 봐온 잔인한 짓을 다시 돌려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이 기뻐하며 웃는 얼굴을 바래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기형의 습관이 생겨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겁니다.


그러니까, 전 여태 단 하나만을 바래왔던 겁니다. 지나온 것들에 대해 고백할 수 있기를. 제 편집증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모든 걸,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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