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관 Jul 01. 2022

빛나지 않아도 숭고하다.

ㅣ당연한 줄 알아던 당연하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는 두려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밤을 유달리 좋아했다. 생밤의 오독함도 좋고, 삶은 밤의 포근함도,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는 군밤까지, 밤을 정말 좋아했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엄마는 “제사 끝났다. 아들 밤 먹어라” 할 정도로 밤을 좋아했다.


어느 날 퇴근했더니 아내가 삶은 밤을 일일이 까서 밀폐 용기에 담아 놓았다. 마침 출출하던 터라 맛있게 먹었다. 원래 삶은 밤은 깔끔하게 먹기가 성가시다. 반으로 갈라 찻숟가락으로 파서 먹는데 이마저도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데 아내가 깔끔하게 까놨으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삶은 밤 까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   

   

어느 주말 또 밤을 삶았는데 지난번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엔 내가 밤을 까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다. 성한 밤이 하나도 없었다. 밤을 까는 건지, 뭉개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연속적으로 실패만 거듭했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목이며 허리까지 뻣뻣해질 정도였다.   

  

“어때 막상 해보니까 어렵지.”      


아내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는데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일상을 유지함에 보이지 않는 노력은 늘 이런 식이다. 생활 속에 묻혀 있다 보니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 버린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이 일상에는 널려있다. 


수건

정리된 수건, 가지런한 속옷과 양말, 재활용품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배출 같이 간과하고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도 누군가의 노력과 헌신이 있다. 그렇다고 대단히 빛나지도 않는다. 다만 그 당연함이 중단되면 드러나지 않았던 노력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당연한 줄 알았던 당연하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는 순간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퇴직이 두려운 건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의 당연함과 이별하기 때문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너무나 당연했던 젊음과 멀어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찾아온다. 생각 없이 누려왔던 당연함의 반전 앞에 마음이 허해진다.     


나는 퇴근하고 글을 쓴다. 대학생인 큰 아이는 아직 귀가하지 않았고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본다. 초등학생 둘째 아이는 숙제가 어려운지 막힐 때마다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칭얼거린다. 당연한 하루가 저물어간다. 당연함은 빛나지 않지만 숭고하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 이전글 누구나 가능한 욜로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