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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Jul 03. 2022

따뜻한 무관심

ㅣ상대의 감정을 지켜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뭐 하냐?”

“나야 근무 중이지”

“언제 퇴근해 소주 한잔할까?”

“오늘 야근이라 많이 늦어”

“에이, 그럼 나중에 하자 수고해.”

“그래 너도 수고해라.”     


오랜만에 친구 Y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의 1년 만에 통화인데 단 몇 마디에 통화가 끝났다.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서로 안부 정도는 물어봐야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하지만 무덤덤한 통화 뒤에는 “잘 지내니? 나는 잘 지낸다.” 같은 암묵적인 안부를 서로 느끼기에 굳이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다. Y를 알고 지낸 세월이 30년이 넘어가는데 가늘더라도 길게 이어지는 끈끈함은 바로 이런 무관심에 가까운 관계의 스마트함 때문이다. 


Y가 뒤늦은 나이에 들어간 방송통신대의 졸업작품에 연기자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가 연출하는 화면 안에서 연기를 했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 연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리고 민망할 뿐이다. 다만 친구의 요청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졸업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술자리에서 책을 내밀며 “어이 서 작가 싸인이나 해줘.” 했던 Y 역시 처음으로 출간한 책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묻지 않았고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커피


살다 보면 남들보다 조금 더 각별해지거나,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 머무를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다. 타인의 삶에 너무 깊이 관여하거나 물건이나 감정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말못하는 거리 두기가 진행되고 삶이 피곤해진다.     


한때 “따듯한 무관심” “잊혀질 권리” 같은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사회적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내 감정의 공간을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오판한 이들의 분별 없는 행동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기질이 자신도 모르게 발휘될 때가 있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혹은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도를 넘는 감정의 경계를 오가는 이유는 스스로 연륜이 쌓였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나이에 기대어 위치를 정하는 무례는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차라리“알아도 모른 척”의 미덕을 발휘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관계의 스마트함은 상대의 감정을 지켜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Y에게 전화나 해봐야겠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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