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상대의 행동이 나의 궤적을 벗어난다고 느낄 때
아버지는 회사에서 주차관리 반장으로 일하셨다. 그때 나이가 이미 칠순이 넘으셨다. 예식장과 대형 회의실이 있는 건물이라 주말이면 주차 홍역을 치르는데 직원들만으로 감당이 안 되었으므로 알바생들이 투입되었다. 아버지는 알바생들을 관리하며 방문객의 차량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차량 흐름과 인력을 함께 관리하는 셈이었다. 특히 예식이 많은 봄, 가을에는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업무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알바생들의 태도에 늘 불만이셨다. 학생들이 눈치도 없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장이 지시를 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줘야 하는데 차들이 밀리건 말건 느릿느릿 경광봉만 흔들고 있다고 불만이셨다.
그러던 아버지가 고령을 이유로 직장을 나오셨다. 하지만 워낙 일을 철저하게 해오신 분이라 회사에서는 다시 나와달라는 연락이 계속 이어졌다. 고심 끝에 다시 직원으로 들어가기는 무리이고 바쁠 때 알바 형태로 일을 도와주기로 하셨다. 알바생을 관리했던 사람이 알바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주말이면 종종 시간제로 일을 하셨다. 이때 아버지는 알바생들의 심리를 알게 되었다.
“알바라는 게 시간만 떼우면 되니까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거야, 소속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시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애초부터 열심히 와는 거리가 멀었지 그런 학생들을 자꾸만 다그쳤으니, 서로 답답했던 거야.”
반장의 관점이 아닌 알바생의 관점으로 업무를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고 끝내 재취업을 하셨다. 업무는 종전과 달라진 게 없지만, 알바생들을 관리하는데 아버지의 스트레스는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
아버지는 “나이 칠십 넘어서도 배운다.”라고 하셨다. 오랜시간 체득된 사실을 전혀 다른 상황에서 배움으로 이해하셨다. 이해는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간혹 상대의 행동이 나의 궤적을 벗어날 때가 있다.
그때 딱 한 번만 상대의 관점에서 나를 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