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력과 치매 정말 관계가 있을까?
청력과 치매는 관련이 있을까?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산 병원 노년내과의 정희원 선생도 치매에 걸리는 원인 중에 하나로 청각장애를 꼽았다.
나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고 단지 치매를 가진 엄마를 둔 딸이다. 그러니 실은 의학적 전문 지식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엄마가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사실 치매에 관심도 없었다. 엄마는 치매 이전에 청력 장애 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가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고 궁금해져서 열심히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 보청기를 맞추러 갔다가 청력과 치매와 연관이 있다는 글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실은 나도 청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에게 노인정은 식사도 해결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좋은 공동생활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엄마는 노인정을 극도로 싫어했다. 왜 노인정을 그리 싫어하냐고 물어보았더니 쓸데없는 자랑들만 한다고 싫다고 했다. 어쩌면 특별히 자랑할 것도 없는 평범한 자식을 둔 자신이 싫었을 수도 있겠다. 또 한 편의 생각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도 한 가지 이유 중에 하나였을 듯하다. 할머니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귀가 잘 안 들리니 제 때에 대답도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도하는 등의 불편한 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어떤 경로에서인지는 몰라도 보건소에 있는 기억키움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내가 사는 성북구는 보건소 건물에 기억키움센터가 같이 있다. 기억키움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엄마의 경우는 10시에서 12시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는 수업에 나가셨다. 노인정도 안 가는 엄마가 어딜 가신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기억 키움 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 치매 관련 의사 분이 오셔서 진찰을 해주시는 데 거기서 치매 진단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처음 받기도 했다.
보청기를 맞추는 것도 처음에는 엄마가 스스로 하셨던 거 같다. 내가 맞춰드린 기억이 없으니 게다가 청력 장애등급도 스스로 해결하셨다. 그것도 나중에 보청기를 해드리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는 기억키움센터도 스스로 알아서 가시고 무척 개척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예 보청기를 하려는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던 거였다. 내 기억엔 보청기 문제로 엄마와 다투던 기억만 많이 남아 있어서 보청기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내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이 내력인듯하다. 나도 이미 50대 초반에 오른쪽 귀의 청력이 일반인의 50% 정도여서 작은 소리나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그래서 생기는 오해도 가끔씩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때에는 나는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주 중요한 자리에는 보청기를 양쪽 다하고 좀 덜 중요하다 싶으면 오른쪽만 하기도 한다. 엄마와 보청기 때문에 수년간 하니 안 하니 하면서 싸움을 한 경험과 보청기도 일찍 맞춰서 사용하는 습관이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나는 일치감치 보청기를 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해보니 보청기가 사용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귀에 보청기가 있다는 이물감. 입속에서 나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번거로움, 두통도 가끔씩 있다.
중요한 문제는 잘 못 알아들어서 대충 짐작으로 알아들었을 때 오해가 많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들은 말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결국엔 자신감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인간은 당사자의 문제로 닥쳐야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원래 있던 보청기를 분실해서 그동안 못했던 효도를 하는 차원에서 엄마를 모시고 보청기를 하러 갔다. 이때가 엄마는 80대 중반이었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였다.
먼저 이비인후과에서 청력 검사를 해야 했다. 엄마의 귀에서 조금 과장하자면 마카다미아만 한 귀지가 나오는 것이었다. 분명히 콩알보다는 컸다. 귀지가 그 정도의 크기일지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보통 사람은 불편한 걸 느끼면 귀지 청소를 하는데 아마도 엄마는 불편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느끼지 못했을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해결을 할 수도 없는 경우이다. 치매는 바로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렵게 말하면 단기 기억 장애가 가장 큰 증상인 거 같다. 어디에 부딪혀서 다쳐도 금방 잊어버려서 왜 다쳤는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한 예이기도 하다.
이비인후과 진료를 마치고 보청기 매장에 갔더니 데스크에 "청력이 나쁘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팻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말이다. 잘 안 들리면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것이 줄어들고 그러면 치매 발병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보청기 회사의 마케팅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의 치매 일문일답"을 읽다 보니 질문 27(P69~P70)의 답변에서 말하길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환경적 원인이 있나요라는 질문의 답에 '비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의 30~50퍼센트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잔재적으로 변화가 가능한 위험요인으로
확인된 것은 중년기의 고혈압과 어린 시절 조기교육의 부족입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과거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 신체활동이 부족한 사람, 사회적 교류가 별로 없는 사람, 과체중인 사람,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 혈중 지질 농도가 높은 사람, 머리 부상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서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결국엔 주위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는데 불편을 느끼게 되고 엄마가 잘 안 들리니 불편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센터에서도 수업하는데 진행이 잘 안 된다고 보청기를 꼭 하고 등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잘 안 들리니 다른 사람들하고 진도를 맞추기가 힘들다고 한다. 아침마다 보청기를 챙겨서 귀에 넣어주는 것도 내 몫의 일이었다. 문제는 보청기를 아침에 하면 언제 어디서 보청기를 빼서 어디다 놓았는지 찾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자꾸 잃어버리고 찾고 다시 만들고를 반복하다가 한 달에 두 번 보청기로 오백만 원 이상을 써보니 결국엔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다.
보청기는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비싸기도 하니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엄마 친구분이 필요할 때만 귀에 꽂는 일종의 확성기 같은 것을 추천해 주셔서 사용해 보니 TV를 보실 때는 사용하기에 편하긴 했었다. 이런 도구가 자신이 판단해서 사용을 할 수 있을 때는 더 유용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필요하면 귀에 꽂으면 된다. 종로에 있는 의료기 상사에 가면 10만 원대에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심지어 후배 부모님께 드리려고 살 때는 쿠팡에서 오만 원대에 사기도 했다.
엄마가 보청기를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믿음에도 이유가 있었다. 90살이 넘으면 흰머리도 까만 머리로 바뀌어서 나오고 안 들리는 귀도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 들리게 되는데 혹시 보청기를 하게 되어 안 들리게 되면 큰일이라 여기는 듯했다. 환생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신은 아마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눈치였다. 내 생각엔 비교적 합리적인 편인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안 하고 혼자서 버틴 듯하다.
나는 상냥한 딸은 아니지만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딸에게 조차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엄마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던 거 같다. 엄살도 떨고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그랬으면 내가 싫어했을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