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26세의 나이에

by 이상현

#77 26세의 나이에

축령산에 올라 독수리 부리를 닮은 수리 바위를 지나 정상 못 미쳐 남이 바위에 이르렀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바위에 이름이 붙인 것이 신기했습니다. 남이 장군이 수련했다는 이곳은 여러 산줄기를 내려 볼 수 있는 것 외에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냥 그런 바위였거든요. 움푹 파인 곳에서 남이 장군이 앉아서 산 아래를 보고 수련을 했다고 하더군요.


남이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남이 장군의 활동 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이 장군이 누구이지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함께한 친구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줍니다. 더 궁금해져 찾아보니 남이 장군은 참 기구한 인생을 살았군요.


남이 장군의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고, 어머니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 공주였습니다. 집안이 조선의 명문가이었군요. 게다가 총명하고 기개가 당당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아 26세에 병조판서에 오릅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이르는 병조판서를 한 사람은 한국 역사에 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해 예종으로 왕위가 넘어가자마자 바로 해임당하지요. 문제는 해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 한 수가 문제가 되어 역모로 몰려 거열형(車裂刑)으로 처형됩니다. 이것이 모두 그의 나이 26세에 일어난 일들이지요. (거열형은 죄인의 다리를 두 대의 수레에 한쪽씩 묶어서 몸을 두 갈래로 찢어 죽이던 끔찍한 형벌로 조선 중기에 없어졌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최고의 권력에 잠시 올랐다가 몸이 뜯겨지는 죽임을 당했으니 그의 혼령은 하늘로 바로 올라가기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남이 장군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을 송나라 학자 정이는 어린 나이에 출세하고(소년등과 小年登科), 대단한 부모 형제를 두고(석부형제지세 席父兄弟之勢), 재능이 있는데 글까지 잘 쓰는 것(유고재능문장 有高才能文章)이라 했지요. 금수저로 태어나고 재능과 글솜씨가 있고 출세를 빨리 하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행복이면 모를까 세 가지 불행이라니. 이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알 듯 모를 듯하였습니다. 아니 머리에서 이해되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이 바위에서 쉬면서 ‘소년등과’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아래 있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저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렇게 멋지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남이 바위에서는 주위의 제법 높은 산들이 눈 아래 펼쳐집니다. 지금 잠시 발아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산들도 실상은 땅에 서 있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이 높고 큰 산이지요.


산을 올라 잠시 머물 수는 있지만 다시 내려가야지요. 남이 바위는 수백 년 그 자리를 지키며, 저같이 무지한 이에게 ‘소년등과’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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