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보신 적 있나요?
바닷속 이야기를 다룬 만화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놈 말입니다. 해마는 참 신기하게 생겼죠. 머리는 말처럼 생긴 데다 서서 물속을 다니는 것을 보면 이런 동물이 진짜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 해마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 생각했었어요.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현실 세계에 있을 것이라 믿을 수 없었고, 실제로 본 적도 한 번 없었기 때문이지요.
해마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40대가 되어서입니다. 그것도 사실 살아 움직이는 해마는 아니었습니다. 외국 여행 중 한 바닷가에서 해마를 그대로 말려 기념품으로 팔고 있더군요. 비록 살아 있는 해마가 아니라 해마를 그 모양 그대로 말린 박제에 불과했지만,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해마를 직접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해서 주저 없이 바로 샀지요. 숙소로 돌아와 그 해마를 가족에게 보여 주며 아이들보다 더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살아있는 해마를 직접 볼 수가 있었지요. 새로 생긴 수족관 한구석에 살아있는 해마가 물풀 사이로 헤엄치고 있더군요. 그때도 살아서 움직이는 해마를 보느라 그곳에서 오랜 시간 떠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마는 바닷속에만 살고 있을까요. 해마는 바다뿐만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도 존재하지요. 기억을 공부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뇌의 기억센터가 바로 해마입니다. 뇌의 해마는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로 뇌의 중앙부위 깊숙이 양쪽으로 두 개가 있어요. 바닷속 해마처럼 꼬리를 말고 있는 모습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해마가 영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아세요? sea horse라고 한대요. 너무 쉽죠. 해마 즉 바다의 말이니, sea horse이지요. 이 해마가 학명으로는 히포캄푸스(hippocampus)라고 하는데, 뇌 속의 해마도 영어로 히포캄푸스라고 해요. 그런데 히포캄푸스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와요. 바다의 신 포세이돈 있지요.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타고 다녔다는 애마가 바로 히포캄푸스에요. 생김새가 머리와 앞다리는 말을 닮았고, 몸통 뒷부분과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다고 하지요. 아마도 그리스 신화의 히포캄푸스는 바닷속 해마에서 생각해 낸 상상의 동물인 듯합니다.
이렇게 바닷속에도 있고,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는 히포캄푸스가 뇌 속에서는 기억의 센터 역할을 합니다. 기억 센터라 하지만,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주로 기억을 만드는 곳이지요. 우리가 간혹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그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해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 속의 해마가 제 기능을 못 하면 어떻게 될까요? 해마가 없다고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집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초기에 해마 부분이 위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최근 기억부터 잊어버리게 되지요. 치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해마가 어떻게 위축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건망증 심한 물고기 '도리'는 아마도 해마가 쪼그라들어 있을 것 같아요. 해마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것을 다룬 영화가 또 있습니다. 아내가 살해당한 후 충격으로 새로운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메멘토'라는 영화이지요. 이 영화에서 기억장애 주인공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기억을 남겨두려고까지 하지요. 새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할 때 얼마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해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많아졌네요. 다행히 아직 제 머릿속 해마가 위축이 완전히 오지는 않았나 봅니다. 해마 이야기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을 보면... .
이제 글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잠자는 동안에 꿈을 꾸는 렘(REM)수면은 여러 가지 동영상 조각들을 이것저것 맞추어 편집 정리하다가, 깊은 수면인 비렘(non-REM) 수면에는 해마가 정리된 정보를 대뇌피질로 보내 장기 기억하도록 한다고 해요. 이렇게 해마는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 모두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이제 바닷속 해마도 귀여워해야겠지만 우리 머릿속 해마도 잘 보살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