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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ul 12. 2021

#108 알바사 머무르기

#108 알바사 머무르기


알바사에 머물러 보셨나요? 알바사? 알바라는 이상한 이름의 외국 사찰인가요? 아니면 알바 회사인가요? 알바사는 지도에 나오지 않지요. 알바사는 저의 명상 방법이니까요.


명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호흡만 그저 지켜보는 방법도 있고 자세부터 굉장히 세세하게 제시하는 복잡한 방식도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잠시 시간을 내어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런 걸 왜 하고 있지? 몇 분쯤 지났나?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불편하네.’ 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만, 그 짧은 시간도 마냥 길기만 느껴지며 좀이 쑤시고 생각은 쉬지 않고 튀어나옵니다.

저는 시끄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힐 때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세 글자에 집중하곤 합니다. 바로 ‘알바사’이지요. 알바사는 ‘알아차리고 바라보며 사라지기’를 의미합니다. 혹시 지금 시간이 있으시면 알바사에 들려 보시겠어요.


첫째, 알아차림.


알아차림은 숨을 들이쉬면서 행합니다. 무엇을 알아차릴까요? 들이쉬는 숨소리를 알아차릴 수도 있고 자신의 몸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릴 수도 있지요. 나를 알아차린다고 하면 너무 뿌연 개념이니 나의 경계를 알아차릴 수도 있지요. 저는 ‘알바사’에서 엉뚱하게도 엉치뼈를 알아차립니다. 꼬리뼈 위에 삼각형 모양의 편평한 뼈이지요. 엉치뼈를 똑바로 세우면 몸 전체가 똑바른 자세가 됩니다. 몸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 애써 허리도 세우고 어깨도 펴려고 힘쓰지 말고 그냥 엉치뼈를 세우고 그 위에 척추를 자연스레 얹혀 놓는다는 느낌이지요. 엉치뼈를 세우면 몸의 다른 곳에 힘주지 않아도 몸은 자연스럽게 똑바로 됩니다. 들이마시면서 엉치뼈를 알아차리고 바로 세웠다면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둘째, 바라봄.


우리가 숨을 쉴 때 잊고 지나가는 구간이 있지요. 들숨과 날숨 사이 잠시 숨이 정지하는 구간입니다. 정지하면 멈춤과 같이 강한 느낌이 드신다면 들숨과 날숨 사이의 경계에 잠시 머무는 시간으로 받아들이셔도 좋겠지요. 그 들숨과 날숨 사이 잠시 머무는 시간에 저는 바라봅니다. 무엇을 바라볼까요? 바라볼 것은 널려 있지요. 눈을 감고 있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이 들숨과 날숨의 경계에 저는 나의 경계를 바라보곤 합니다. 피부로 둘러싸인 나의 경계를 잠시 바라보지요. ‘아, 이게 나이구나. 이게 내 몸이구나.’ 내 몸의 경계를 바라봅니다. 들이쉰 숨으로 꽉 찬 나의 형태, 내 몸의 경계를 바라보지요.


셋째, 사라짐.


이제 숨을 내쉬면서 나의 경계를 지워봅니다. 지우개로 지우듯이 나의 경계를 지울 수도 있고 숨을 내쉬면서 경계가 허물어지듯이 사라질 수도 있겠군요. 경계가 지워지면 내 몸이 사라집니다. 나의 바깥과 안의 세상을 구분하던 경계가 사라집니다. 내가 없습니다. 나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세상과 나는 이미 하나입니다. 그렇게 내가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도 그걸 바라보는 뭔가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존재, 관조자. 이름이야 어떻게 붙여도 좋지만, 나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없어진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지요.


숨을 들이쉬며 알아차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나의 경계를 바라보고 숨을 내쉬면서 그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 머무는 알바사가 제가 명상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나의 경계인 내 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나에게 주어진 하루 1,440분의 시간 중 몇 분이라도 그 경계가 사라진 알바사에 머뭅니다. 여러분도 하루에 휴가 몇 분 내시어 알바사에 머물러 보시겠어요?

(2021. 7. 12.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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