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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ul 25. 2021

#111 무엇과 무엇 사이

#111 무엇과 무엇 사이


공간이 있습니다. 텅 빈 공간. 어쩌면 이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될지 모릅니다. 공간은 원래 텅 비어 있으니까요. 그 공간에 어떤 물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물체를 보면서 원래 있던 공간을 보지 않습니다. 공간은 무한히 넓은데 작은 물체 하나에 집중합니다.


공간에 눈을 돌려 보세요. 이제까지 보지 않았던 텅 빈 공간에. 그 공간에 눈을 돌릴 때 우리는 깊고 넓은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있던 공간이지요.


침묵합니다. 침묵 속에 소리가 들립니다. 어떤 소리가 들리지요. 귀가 쫑긋거리면서 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제 그 소리와 소리 속의 침묵을 들어보세요. 침묵을.


침묵은 소리와 소리 사이에 있습니다. 공간이 물체와 물체 사이에 있는 것처럼. 그 사이를 느낍니다. 그 틈새를 느낍니다. 그 틈새가 점점 넓어짐을 느낍니다.


고요함. 공간과 침묵 속에 고요함이 머뭅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무 물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소리와 소리 사이, 물체와 물체 사이의 침묵과 공간 속에서 고요함에 머뭅니다.


(무척 무더운 날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매년 "이번 여름이 제일 더워."라고 말하지요.

더위와 더위 사이, 잠시 지나가는 바람을 느껴봅니다.)


2017. 7. 25 사 년 전 오늘 씀.  그날도 꽤 더웠나 봅니다.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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