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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Sep 26. 2021

#113 자리를 물려줍니다

#113 자리를 물려줍니다


아침에 접하는 바람이 쌀쌀합니다. 춥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한낮의 햇살은 뜨겁지만, 그래도 아침 바람은 시원함을 넘어 쌀쌀합니다.


더위가 흘러갑니다. 더위가 가고 나면 그 자리에 추위가 오겠지요. 그렇게 더위와 추위가 한 번씩 자리바꿈을 하면 한 해가 지나갑니다. 세월은 한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겨울을 매해 보여주고 차곡차곡 쌓여가지요.


이번 여름은 무척 더울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유월부터 시작한 더위는 올해 여름이 범상치 않은 더위를 던지리라 생각하게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간간이 뿌리는 소나기로 대지는 식을 때가 자주 있었고, 며칠 무더위에 지친 밤을 보내고 8월의 둘째 주가 되니 한결 더위를 이길만했습니다. 그렇게 이번 여름 더위도 지나갑니다.


더울 때는 추운 겨울이 그립고, 추울 때는 여름의 햇살이 그립습니다. 더위와 추위는 그렇게 상대적이지요. 더울 때는 ‘이 더위가 정말 지나가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8월의 달력이 뜯어지면 더위도 때를 맞추어 물러갈 준비를 합니다. 추위에게 자리를 넘길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더위와 추위, 여름과 겨울만 이야기하면 봄과 가을이 서운하겠네요. 더위도 잠깐이고 추위도 잠깐이고 그 중간의 나날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 중간의 무난한 날들을 잊어버리고 참기 어려웠던 더위와 추위만을 기억하곤 하지요.


밖에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지요. 그런 집이 없어, 혹은 어쩔 수 없이 길거리에서 추위에 노출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따뜻한 집에 있다는 것은 안도의 숨을 돌리게 하지요. 추운 겨울밤의 어둠은 더 어둡고 길지요. 그 추운 겨울밤도 계속 길어지지는 않습니다.


얼어붙은 계곡은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곡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지요. 그 물의 흐름은 봄이 온다는 것을 알리려는 신호입니다. 겉에 얼음이 있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나는 계곡에서 우리는 멀지 않아 봄이 올 것을 겨울에 이미 알아차립니다.


계곡의 물처럼 그렇게 모두 흘러갑니다. 계절도 흘러가고 인생도 흘러가지요. 우리는 그저 그 흐름을 바라보며 살아가지요. 그 흐름을 거역하려고 애써봤자 이길 수 없고, 그 흐름이 제대로 흘러가게 기다려야지요. 흐름이 삶이지요. 흐름이 자연이지요. 삶이 자연이지요.


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견뎌낼 수 있겠지요. 다 지나갈 것을 알기에 아무리 뜨거운 여름도 이겨내는 걸 겁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고 그 뜨거운 열기가 계속 변화 없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이미 지옥이겠지요. 더워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조금 시원해지는 날도 온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더위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지요.


무엇이든 흘러갑니다.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 흘러갑니다. 뜨거운 여름날에 이 더위가 이어질 것 같지만 결국 지나갑니다. 더위는 추위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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