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고요 속에
고요합니다. 한밤중에 잠을 깨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으니 고요 속에 머물게 됩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고요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고요의 한자어를 찾아봤습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원을 알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기억하기도 좋아 어원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이 있어 어원을 찾을 때 한자 어원을 뒤적이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가장 공부하기 싫었던 과목이 한자인데, 나이 들어 뒤늦게 한자 사전을 들춰봅니다.
고요라는 말뜻이 궁금해 그 한자 어원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고요는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그래도 아쉬워 고요의 뜻에 해당하는 한자를 찾아봤습니다. 여러 한자어가 있지만, 고요할 정(靜)을 보겠습니다. 고요할 정(靜)은 푸를 청(靑)과 다툴 쟁(爭)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쟁(爭) 자가 재미있습니다. 갑골문에 나온 쟁(爭) 자를 보면 소의 뿔을 놓고 손으로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지요. 소를 서로 가지겠다고 뿔 하나씩 붙들고 자기 쪽으로 안간힘을 쓰고 당기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한자는 주로 어떤 것의 모양을 본떠 생긴 상형문자이지요. 한자를 보다 보면 그림이 그려지면서 그 뜻을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소가 내 것이요." 싸움이라는 것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서 나오지요. 전쟁이란 앞에 놓인 땅에 경계를 새로 그으며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우기면서 시작합니다. 내 경계가 사라진 이에게 다툼은 있을 수 없지요.
자기 것만 챙기겠다고 자기 주장만 난무할 때 세상은 시끄럽게 됩니다. 대포와 총을 쏘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권력을 쥐려니, 선거 캠프와 캠프가 맞부딪히며 큰 목소리를 냅니다. 소뿔을 당기면서 욕을 해대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싸우게 되지요.
고요함(靜)은 그런 다툼(爭) 앞에 푸르름(靑)을 둔 상반된 뜻이 조합된 글자입니다. 푸를 청(靑)은 우물 위에 새롭게 자라는 나무를 그렸지요. 세상사 여러 시끄러운 다툼 속에서도 나무와 물이 고요함을 나타냅니다.
고요의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니 뜻풀이가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1) 조용하고 잠잠하다. 2) 바람이 불지 않는다. 조용하다는 말은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지요. 시끄럽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고요를 잘 이해하려면 시끄러움을 알아야지요. 시끄러움에 해당하는 한자어 중에서 시끄러울 요(擾)는 근심 우(憂)자가 들어 있습니다. 시끄러움은 근심을 낳고, 고요는 평온을 낳지요. 고요는 시끄럽지 않은 상태, 마음이 평온한 상태입니다. 고요는 근심과 멀어진 진정한 평화의 상태이지요.
고요는 바람 불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람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요. 이리저리 마음이 오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 몸에 마음이 머무는 상태가 고요함이겠지요.
고요합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눈까지 감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고요 속에 글 쓰는 소리만 들립니다. 고요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