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어딘가에서 와서
눈을 감습니다. 내가 온 곳이 어디인가. 당신이 온 곳은 어디인가. 그것이 온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다른 곳인가, 같은 곳인가. 같은 곳인지 다른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기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머뭅니다. 그것을 지구의 언어로 '살아있다'라고 합니다.
밥을 먹습니다. 살려면 무엇인가를 먹어야지요. 다른 생명을 먹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먹는다는 것을 너무 무섭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먹고 생각하며 움직이고 자는 것'이지요.
먹는 것은 다른 것과 함께 됨입니다. 합체라고 표현하면 이상한가요. 다른 존재, 그것이 동물이 되었든, 식물이 되었든 그 존재와 합쳐지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는 것은 위대한 행위이지요. 먹는 행위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김지하 시인은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이라 하였지요. 지금은 그에 대해 변절 논란이 있지만, 20대에 접했던 그의 <밥>은 젊은 제 가슴을 쿵 내리쳤습니다. 오랜만에 그의 시를 옮겨볼까요.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김지하 시,「밥」 -
'밥은 하늘이다(食卽天)'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에서 비롯되지요. 최시형은 '밥 한 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는 것(萬事知 食一碗)'이라며,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以天食天)'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씀을 남깁니다.
밥알 하나에도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도 시원한 빗방울도 담겨 있지요. 농부의 손길도 담겨 있습니다. 그 밥알을 누군가 전달하여 제 밥상 위에 놓습니다. 밥알도 사람들이 '벼'라고 이름 지은 생명으로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오기 전에 그것은 살아 있었고, 이제는 제 몸 어딘가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목적은 다른 것과 함께 되는 것일까요. 나는 살면서 무수한 생명을 내 몸에 받아들여 살아가지만, 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나무와 풀과 공기가 나를 받아들이겠지요.
공기를 마십니다. 공기를 생명체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 우습지만, 공기 없이 지구 위의 대부분의 생명체는 살아가지 못하지요. 공기는 기꺼이 자기를 우리가 살도록 내어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고 살아가나요.
눈을 감습니다. 내가 어딘가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전부 내어주어 가볍게 떠나야 할 텐데, 제 몸은 다른 생명체를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어놓지 못해 무겁기만 합니다. 이 무거움 내어놓고 원래 있던 곳으로 가벼이 돌아가야 할 텐데요. 삼 킬로그램 정도로 지구에 와서 수십 배 커졌으니 너무 많은 것을 이 행성에서 받아들이기만 했지요.
어딘가에서 와서 밥 잘 먹고 살아갑니다. 자주 잊곤 하지만, 밥그릇에 하늘이 담겨 있다지요. 허겁지겁 밥숟가락 입에 가져가다 잠시 멈춥니다. 밥에서 하늘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