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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Dec 26. 2021

사진 한 장 담지 못했지만

어딘가에서 멋진 광경을 보면 그걸 누구와 나누고 싶어 합니다. 이문재 시인은  마음을 시로 표현하지요.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그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는 경우 사진으로 담아와 그 누군가에게 보여주지요. 가족에게 혹은 친구에게. 저는 여행을 가면 셀카는 거의 찍지 않고 풍경 사진을 주로 찍습니다. 혼자 등산을 하여도 정상에서 셀카 인증샷보다 주위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지요. 그 절경에도 심취하지만, 그곳에 오지 못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신이 나서 사진을 찍지요.


요즘은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는 않지만, 오래된 제 아0폰보다 화질이 좋은 소형 디카를 함께 챙기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떠났습니다. 기상예보는 41년 만에 한파라고 겁을 주니 손 시리게 사진 많이 찍을 것 같지 않아 그냥 휴대폰만 가지고 북한산으로 길을 떠났지요.


추우니 멀리 가지 않고 가볍게 가려다가 북한산 정상 백운대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백운대 오르는 마지막 루트는 인산인해라 줄을 서서 올라가야지요. 그 줄 서서 올라갈 인내심도 별로 없고, 험한 바윗길 올라갈 용기도 빈약하여 북한산을 오르더라도 백운대에 올라간 적이 나이 들어서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추워 사람도 적으니 백운대에 오를 절호의 기회였지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추위에 약한 아0폰이 작동을 멈추더니 올라가는 사이 완전 방전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사진이라고는 북한산 입구의 겨울 계곡 사진 한 장 달랑 남겨 놓고.


서울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멋진 광경을 오랜만에 사진으로 담지 않고 가슴으로 담았습니다. '자꾸 흔적 남기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그냥 담아둬' 산신령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백운대의 멋진 광경을 사진 한 장 담지 못했지만, 2021년 마지막 일요일 정말 오랜만에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뿌듯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연의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담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고 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가족과 오래된 친구, 그리고 얼굴   직접  적도 없지만 누구보다 자주 만나게 되는 페친들도 있지요. 오늘은 백운대 정상 대신 북한산 아래 얼음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 사진  장으로 대신합니다.


연말 건강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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