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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an 23. 2022

#120 평화는 미소다

#120 평화는 미소다


평화롭기를 바라지요. 누구나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싸움이 없는 상태의 평화로움. 평화를 연상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푸른 풀과 나무, 그 풀밭에 서서 한가로이 풀 뜯고 있는 소. 그걸 바라보다가 따스한 햇살에 눈 감고 누워 낮잠을 즐기는 모습. 평화는 고요하고 조금은 정적인 모습이 연상됩니다.


움직임이 없지만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는 바람에 잎새가 흔들리고, 소는 등에 붙은 쇠파리를 꼬리를 흔들며 쫓기도 하면서 뜯은 풀을 되새김질합니다. 팔베개하고 그걸 바라보다 살짝 잠이 들었더라도 우리의 가슴은 천천히 움직이지요. 숨을 쉽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임이지요. 우리는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숨을 쉬지요. 몸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호흡도 멈춘 상태를 우리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숨을 쉽니다.  


호흡은 두 글자입니다. 숨이라 일컫는 호흡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지요. 들숨과 날숨입니다. 호흡이란 단어는 호(呼)와 흡(吸)이란 한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의 숨 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호’하면서 내쉬고, ‘흡’하면서 들이쉬고 있습니다.


‘흡호’가 아니고 ‘호흡’입니다. 누군가가 이 단어를 만들었을 때 굳이 ‘흡호’라 하지 않고 ‘호흡’이라 함은 숨 쉬는 것에서 내쉬는 ‘호’가 우선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이 들이쉬기만 한다면 우리 몸은 풍선처럼 빵빵해져 터져 버리겠지요. 호흡할 때 흔히 들이쉬는 것이 먼저라 생각하기 쉽지만, 가만히 보면 내쉬는 것이 우선일 것도 같습니다. 내쉬지 않고 어찌 들이쉴 수 있겠어요. 내쉬어 빈 공간이 있어야 들이쉴 수 있지요. 숨은 내쉬어 만든 빈 공간에 공기를 들이쉬어 잠시 머물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흡호’가 아니고 ‘호흡’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억지를 부려봅니다. 먼저 내쉬라고, 먼저 들이쉬었던 숨 내려놓으라고 호흡이 된 것이 아닐까요.


호흡은 두 글자이지만 호흡이란 두 글자 사이에는 틈이 있습니다. 엄밀히 들여다보면 호흡이란 과정은 둘이 아니고 넷이지요. 내쉼과 들이쉼의 사이에 각각 틈이 있지요. 그 사이를 무엇으로 채우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집니다.


그 사이를 불안과 긴장으로 채우곤 합니다. 그 사이를 간혹 분노로 채우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평화와 미소가 머물기도 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느낍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숨을 들이쉽니다. 그 들이쉼이 도달할 곳은 평화입니다. 들이쉼과 날숨 사이 정류장에서 평화가 머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안과 우울, 분노가 아닌 평화로움이 호흡의 사이에 머문다면 무엇을 더 바랍니까.


숨을 내쉬어볼까요? 들이쉬면서 마음을 느꼈으니 내쉬며 몸을 느껴봅니다. 몸은 팔, 다리, 가슴, 배, 머리 등 여러 부위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중 하나를 우선 느껴볼까요. 우리 몸의 대표 격인 얼굴을 느껴봅시다. 숨을 내쉬며 얼굴을 느낍니다.


평생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얼굴, 천천히 흐르는 냇가나 호수에 비친 물에 비친 얼굴, 쇼윈도나 거울에 비친 얼굴, 모두 자신의 반대 얼굴이지요. 좌우가 바뀐 음영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면 무엇인가 어색하지요. 우리는 원래 그대로 살아있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눈을 감습니다. 그 얼굴을 느낍니다.


몸은 마음입니다. 몸이 긴장되어 있으면 마음도 긴장되어 있고, 마음이 불안하면 그 마음이 얼굴로 나타납니다. 자신이 얼굴이 긴장되거나 화가 나 굳어진 표정을 원하시나요? 아니지요. 그렇다면 부드럽게 미소를 띠어보세요. 숨을 내쉬며 도달할 곳에 미소가 머뭅니다.


사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 사이라는 정류장을 잊곤 하지요. 숨을 들이쉬며 내 안의 마음을 느끼고, 숨을 내쉬며 내 밖의 세상에 얼굴 표정을 전합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평화가 머물고, 날숨과 들숨 사이에 미소를 띱니다. 마음은 밖에서 볼 수 없으나 얼굴은 밖으로 드러납니다. 미소 띤 얼굴에서 우리는 평화를 봅니다. 평화는 미소입니다.


:”내일도 이후에도 나는 계속 존재합니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려면 아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꽃 또는 나뭇잎이 될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그대에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그대가 충분히 깨달았다면 나를 알아보고 바라보며 미소지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지없이 행복하겠습니다.” - 틱낫한 -


틱낫한 스님은 평화와 미소를 전하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니 떠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하시겠지요. 우리도 오늘 그에게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지으며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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