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길섶에 올라오는 풀처럼
푸른 빛이 올라옵니다. 풀이 봄기운에 올라옵니다. 그런데 아세요? 풀이 어디에서부터 올라오는지. 풀은 길 가장자리부터 올라옵니다. 이상하지요. 넓디넓은 곳 놓아두고 보도블록 있는 길 붙은 경계에서부터 푸릇푸릇 풀이 돋아나지요.
길가, 바닷가, 호숫가. ‘가’과 붙은 단어는 정겹습니다. 중심이 아니고 그저 주변의 주변인데 그 가장자리가 좋습니다. 길가도 정겹지만, 길섶이란 우리말도 있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길섶을 길의 가장자리라고 밋밋하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길섶; 길의 가장자리. 흔히 풀이 나 있는 곳을 가리킨다.’ 사전에도 길의 가장자리, 길섶에 풀이 나는 것이라 풀어주고 있군요.
풀은 가장자리를 좋아할까요. 별로 좋은 환경이 아니잖아요. 별로 편한 환경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풀은 그런 곳에서부터 생명의 푸르름을 싹틉니다. 왜 그리 비좁은 곳을 삐죽이 밀고 나오는 것일까 안타깝기도 하면서 길섶 봄풀을 바라봅니다. 조금 여유 있는 곳에 한적히 자라면 될 것을 길섶에서 길을 밀어내며 풀이 올라오지요. 보도블록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쳐들기도 합니다. 길로 나오지 말라고 막아놓은 블록들을 밀어내고 나옵니다. 벽이 될 텐데, 길섶에 풀은 그걸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지요.
경계에 서 본 적이 있나요. 경계는 끝이지요. 경계는 시작이지요. 경계는 접점이지요. 켄 윌버(Ken Wilber)의 <무경계>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모든 경계선은 또한 잠정적인 전선(戰線)이라는 점 (...)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는 실제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를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는 소심한 사람이라서 경계에 서서 용감히 나선 적은 기억에 별로 없어요. 80년대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대학에서 가끔 시위대 꽁무니에 꼽사리 껴보곤 했지만, 시위대 앞에는 갈 엄두도 못 냈지요. 교문을 까맣게 막고 있는 전경과 백골단과 대치한 상황에서 그 경계인 맨 앞줄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면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슬프게도 2021년 미얀마에서 80년대 한국의 어두웠던 역사가 데자뷔처럼 일어납니다. 여러 사람이 다치고 떠나가고.... 그렇게 자신을 내놓고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있기에 저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그 무리 속에서 용기를 내어 함께 외칠 수 있겠지요.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은 너무 크지만, 그렇게 누군가는 경계에 섭니다.
생명의 힘은 벽을 넘는 것이지요. 미얀마 국민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단단한 벽도 결국 이겨낼 거예요. 길섶에서 올라오는 봄풀의 기운을 경계에 서 있는 이들에게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