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화가 타오를 때
화가 부글부글 끓습니다. 얼굴도 벌겋게 변하고 가슴도 진정이 안 됩니다. 숨소리도 거칠어집니다. 우리가 흥분할 때 발동하는 교감신경은 마음의 감정을 온몸으로 뜨겁게 표현합니다.
화가 날 때 우리는 진정이 안 되고 참을 수 없지요.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경우도 많은데 그 당시에는 화를 참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사회생활이나 친구 관계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도 가정에서는 다른 모습인 경우가 종종 있지요. 밖에서는 온화하고 한 번도 타인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집안에서는 목소리 높여 부부 싸움을 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크게 화를 내기도 하지요.
화(火)는 불이지요. 火라는 글자가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기도 하고 화산이 불을 뿜는 모양이라고도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우리는 매번 집니다. 화라는 감정에 이겨본 적이 많지 않습니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에 매번 질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곤 하지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그런 일을 가지고 화를 내다니.’ 화라는 불이 꺼진 다음에 후회가 몰려옵니다.
왜 화는 우리를 이길까요? 이성은 번번이 감정에 지는 걸까요. 화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화를 이해한다면 도인이 되어 있을까요.
부경복의 <손석희가 말하는 법>에는 감정 뇌가 이성 뇌보다 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지요.
‘감정 뇌의 작용은 빠르고 강하다. 공포, 분노,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물리적인 위험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진화 단계상 이성 뇌보다 먼저 발달했고, 태아의 뇌 형성 단계에서도 이성 뇌보다 먼저 형성된다. 그만큼 외부 반응에 대하여 이성 뇌보다 먼저 작동한다. 또한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므로 작동 강도도 이성 뇌보다 세다.’
감정 뇌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의 책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에서 뇌의 삼층석탑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1층에 파충류의 본능 뇌에 충실했던 아기 악어 이야기, 2층에 사는 포유류의 감정 뇌를 다룬 강아지 이야기, 그리고 맨 위 3층에 위치한 신포유류 인간의 이성 뇌로 변덕스럽고 복잡한 우리의 뇌를 들여다봤지요.
감정 뇌는 이성 뇌보다 아래층에 삽니다. 아래층에 산다는 것은 수억 년 진화 과정에서 먼저 발달하여 자리 잡은 것을 의미하지요. 먼저 발생했을 뿐 아니라 빠르기까지 합니다. 찬찬히 돌아보고 따져보려는 이성 뇌보다 감정 뇌는 몇 배 더 빠르게 작동합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볼까요. 산길을 가다가 나무 뒤에 살짝 뱀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뱀인지 아닌지 일일이 따져보려는 이성 뇌가 뱀과 닮은 점 몇 가지, 다른 점 몇 가지를 차근차근 분석해 답을 구하려고 가까이 다가간다면 우리는 이미 뱀에 물려 독이 몸 안에 퍼지고 있을지 모르지요. 일단 뱀 같은 물체를 발견하는 순간 두렵다는 감정 뇌가 작동하여 이성 뇌가 분석하기에 앞서 재빨리 뒤로 물러서게 하지요. 그래야 위험할지 모를 상황을 일단 피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떨어져 천천히 보니 뱀 같이 생긴 부러진 나뭇가지에 불과한 것을 알아차리지요. 후유 숨 한 번 쉬고 놀란 가슴을 내리쓸고 안심하고 가던 길을 다시 가겠지요.
화는 불이라고 했지요. 살아남기 위해서 화재경보가 신속하게 울려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 감정은 빨리 작동합니다. 좋고 나쁘고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이성 뇌보다 빨리 작동되도록 오랜 세월 우리 뇌 구조가 자리 잡았지요.
재빠른 감정과 달리기에서 이겨보겠다가 이성이 아무리 애를 써봐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살아오면서 백전백패인데도 이겨보겠다고 아등바등해보기도 합니다. 빨리 뛰쳐나가는 감정을 막아서 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감정은 비웃듯이 그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갑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을까요. 맨날 이기는 놈, 뭘 이기려 애를 쓰세요? 그냥 냅두세요. 감정은 워낙 빨라 그냥 지나가요. 불을 억제하려는 에너지는 잘못하면 불에 붓는 기름과 같이 작용해 작은 불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지요. 불이 타다 연료가 타버리면 꺼질 불을 들쑤셔놓는 격이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화났을 때도 그렇지만 남이 화났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순간의 사람에게 이성의 뇌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은 보통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함께 파충류, 포유류의 뇌로 맞불을 놓는 것은 꺼지려던 불을 크게 불이는 것이니 더 위험하지요.
감정이 지나가게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그 감정이란 놈은 워낙 빨라서 빨리 지나갈 테니. 그냥 빨리 지나가는 달리기 선수 뛰는 것 구경이나 하시지요. ‘고놈 참 빠르네. 어, 벌써 지나갔어.’ 화는 관심이나 저항이란 땔감만 더 넣어주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는 못해요. 원래 단거리 선수들이 장거리나 마라톤에는 약하잖아요.
어, 벌써 지나갔다고요. 감정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고요. 거봐요. 백 미터 달리기도 가끔 보면 재미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