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말은 칼이 아니니
마음의 상처를 누구에게 받나요? 적에게? 나를 싫어하는 적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지요. 원래 나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나를 시기하던 조직의 적으로부터 마음을 후벼놓는 화살이나 칼을 맞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러려니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사람은 그러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으니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공격해 온다고 하더라도 내 자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받는 공격이라 어느 정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하지만 아는 사람으로부터 작은 나이프, 아니 포크로 찔림을 당하는 것은 더 상처가 깊습니다. ‘그리도 믿었던 사람인데, 어찌 나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지요. 그 사람이 오랜 기간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었거나 함께 사는 가족이라면 더군다나 더 그렇지요. 오히려 의지하며 살아왔던 이라 믿었는데 그렇게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충격은 아무리 약한 생채기라도 잘 아물지 않고 헤어나기 어렵지요.
‘마음의 상처는 알았던 시간의 길이와 비례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렇지요. 마음의 상처는 우리와 가깝고 오랜 기간 함께 지냈던 사람에게서 더 받게 됩니다. 아무리 오래 알고 잘 알았던 사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 서로 독립적 개체입니다. 가까워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로 오해가 깊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을 안 해도 마음을 서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오해는 깊어지게 되지요.
알았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예측합니다. 그러나 그 예측은 번번이 빗겨나가기도 하지요. 그러면서도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오해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믿었던 사람인데 뒷통수를 맞았다느니, 배신했다느니 하며 억울해하지요. 시간의 길이는 상처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결국 이 많은 오해와 상처를 일으키는 것은 쇠로 만든 칼이 아닙니다. 바로 공기의 떨림에 지나지 않는 ‘말’입니다. 그냥 우리 몸을 통과하고 마는 무형의 말이 날카로운 칼보다 더 예리하게 가슴을 후빕니다. 말이나 칼이나, 비슷하게 생긴 하나의 글자가 사람의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줍니다. 예전에 살면서 칼을 쓰던 무인이었다면, 그 칼을 잘 쓰도록 훈련하며 살았을 텐데, 현대에서 칼을 훈련할 필요는 별로 없지요. 그저 말 하나 훈련하면 됩니다. 칼도 훈련해야 잘 쓸 수 있고, 평소에 잘 갈아놓아야 칼날이 서 있듯이, 말도 평소에 잘 훈련하고 갈아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촌철살인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이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고 아파하는 이를 조금이라도 보다듬는 따스한 말을 전할 수도 있겠지요.
인간만이 동물과 달리 칼과 말을 써왔습니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동안 어쩌겠어요. 칼과 말을 잘 사용할 수밖에. 칼은 남과 싸우고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요. 말은? 말은 나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그런 말을 가지고 굳이 다른 사람 가슴 후비는 칼처럼 사용하지 않기만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이 생에 낙제점 이상은 받고 사는 것이겠지요. 아, 요즘은 칼을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니까, 말로 남에게 상처만 주지 않더라도 인생 점수가 팔구십 점은 될 것 같다고요. 그럴 것 같네요. 말을 칼처럼 주위 사람에게 휘두르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