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Q-PRES 글 틀
학교 다닐 때 가장 하기 싫었던 숙제가 무엇이었나요? 숙제는 뭐든지 하기 싫은 것이지요. 그래도 그중 제가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글쓰기 숙제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제를 주고 원고지 몇 장 분량으로 며칠까지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지요. 숙제 제출 마감 일자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가슴은 점점 더 무겁게 짓눌러집니다. 글쓰기를 죽도록 싫어했던 학생 때 글쓰기는 저에게 내용보다 원고지 칸수를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하는 전쟁 같은 글 채우기였습니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글쓰기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하고 삽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도 아닌 데 그냥 쓰기도 합니다. 여전히 글쓰기는 큰 부담이지만, 글 틀을 만들어 우선 생각 정리를 하고 난 후 글을 쓰면 글쓰기가 다소 편해지고 주제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제 글 틀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글짓기 방식을 Q-PRES 글 틀이라고 이름 붙여 봤습니다. 흔히 말하기 방식으로 자주 제시하는 PREP이 원형이라 할 수 있지요. PREP은 Point-Reason-Example-Point 형식의 말 틀이지요. 제 Q-PRES는 PREP에서 나온 변형 글 틀, 짝퉁 글 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Q
Q는 예상하셨듯이 Question입니다. 글은 ‘어?’로 시작합니다. ‘어, 이상하다. 저게 뭐지?’ ‘어, 이게 왜 이렇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어?’ 한마디에서 글은 시작합니다. 그 의문에 잠시 머물면서 질문은 시작되고, 글은 그 질문에 답을 하게 됩니다. 의문은 뿌옇고 여러 가지로 피어오를 수 있지만, 그중 핵심 질문에 집중할 수 있다면 글의 방향도 흔들리지 않겠지요.
글을 쓰면서 질문 없이 시작한 글은 핵심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도 강사가 그 주제에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해답을 고민하며 준비한 강의는 흥미롭고, 집중해 듣게 되지요. 하지만 질문에 대한 고민 없이 이 자료 저 자료 모아서 그냥 정리한 강의는 흥미도 없고 주제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글이나 강의 모두 준비 과정에서 그 주제에 대한 ‘핵심 질문’이 있어야겠지요. 글을 쓰는 이가 핵심 질문을 가졌다면 읽는 이도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길을 함께 걷게 되지요.
P
P는 Point, 즉 핵심입니다. 자기의 생각 중 이 글에 담고 싶은 가장 ‘핵심 생각’, 그것이 바로 Point 입니다. 핵심 질문에 대한 핵심 답변입니다. 질문에 대해 핵심 한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Point는 의문사로 구분한다면 What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핵심 생각은 아직까지 그냥 자신의 주관적 의견에 불과할 수 있지요. 개인적 주장이니 주관적 관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Point 다음 단계들이 필요합니다.
R
R은 Reason입니다. 자기 생각에 대한 이유를 대는 것이지요. 의문사 Why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핵심 생각에 이어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심화’ 단계이지요.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댈 수 있다면 자신의 주장이 조금 더 힘이 실립니다.
비록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그저 주관적 관점에서 나와 읽는 이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데는 뭔가 부족하지요. 그래서 다음의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E
E는 Example, Episode, Evidence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근거’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앞선 핵심 생각이 주관적이라면 E는 다소 객관적 사례 모음이라 할 수 있지요. 팩트라 할 수도 있고, 단순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즉 무겁게 근거라 할 수도 있고 가벼운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사례들은 핵심 생각을 풍성하게 부연 설명하면서 읽는 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야기는 다양한 의문사가 포함됩니다. Who, When, Where, How. 즉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S
S는 So What입니다. ‘그래서 뭐야? 그래서 핵심 의미는 뭐냐’는 마지막 질문에 마무리 방점을 찍는 것이지요. 단순히 Point를 반복하는 차원이 아닌 마무리 단계에서 ‘생각의 진전’이 이루어집니다. 글을 다 읽고 나서 읽는 사람에게 ‘아하!’라는 느낌표가 남는다면 그 글을 쓴 이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겠지요.
글이라는 것은 ‘어?’라는 물음표에서 시작하여 ‘아하!’라는 느낌표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궁금증에서 시작한 글이 너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면 글은 지겨운 학교 숙제에서 행복한 삶의 여행이 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