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사람의 중심과 드나듦
“조용히 해.” 반장은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이 안 계신 자습 시간의 정숙을 책임지고 있는 반장은 누군가가 떠들면 소리치지요. 그 소리가 더 시끄러운데 말입니다. 학교 다닐 때 어쩌다가 반장을 했던 적이 있지요. 별로 통솔력도 없으니 반이 시끄러운데, 제가 믿는 것이라고는 큰 목소리 하나. 그 큰 목소리로 부재중인 선생님을 대신하여 소리칩니다. 그 순간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는 그 목소리였을 텐데.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떠들고 있다고 사서가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지는 않겠지요. 가까이 가서 손가락을 입술 위에 댈 겁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그렇게 합니다. 나라마다 사회적 행동이 조금씩 다르지만, 손가락을 입에 대는 동작은 모든 곳에서 통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배운 동작도 아닌데 ‘쉿’하는 만국 공통 손동작으로 고요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강의를 듣고 있는 강의실에서도, 연주가 시작되기 전 공연장에서도, 묵언 수행을 하는 절에서도, 피정에서 묵상 시간에도 어디선가 나는 소리를 손가락 하나로 조용하게 합니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곳이 인중이지요. 사람의 중심은 몸의 중심인 배꼽이나 명치 어디쯤일 것 같은데, 사전은 인중(人中)이라 가르쳐 줍니다. 인중은 코와 입 사이에 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천사들은 자궁 속의 아기를 방문해 지혜를 가르치고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 모든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천사는 쉿, 하고 손가락을 아기의 윗입술과 코 사이에 얹는데, 그로 인해 인중이 생겨난다고 하지요. 심보선 시인은 탈무드의 이야기를 듣고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를 남깁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 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 왔다’
(후략)
시인처럼 멋진 시상이 떠오르지는 않고, 인중이 왜 사람의 중심이냐는 엉뚱한 생각만 남습니다. 코와 입 사이에 인중이 있으니, 사람에게 코와 입은 중요한가 봅니다. 누군가는 코로 하늘의 기운, 천기(天氣)를 마시고, 입으로 땅의 기운, 지기(地氣)를 마신다고 표현하더군요. 그 경지까지는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고,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음식을 먹으니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인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에게 여러 구멍이 있는데 인중 위로 몸의 구멍은 모두 두 개이고 인중 아래 몸의 구멍은 모두 하나이지요. 여러 구멍의 역할을 보면 입과 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방향으로만 작동합니다.
눈은 무엇인가를 보는 입력 기관이고, 귀는 무엇인가를 듣는 입력 기관입니다. 밖에 있는 빛과 소리가 눈과 귀로 우리 몸 안으로 전달됩니다.
반면에 배꼽 아래 항문과 성기는 몸 안의 것을 밖으로 내어놓지요. 눈과 귀의 내부로 향하는 방향과 반대로 항문과 성기는 안의 것을 바깥으로 내어놓도록 역할을 맡고 있지요.
코와 입은 어떤가요. 코와 입은 양방향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 들이쉰 숨은 다시 바깥으로 내쉬게 되지요. 입으로 음식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지만, 말로 자기 생각을 바깥세상으로 내어놓습니다.
코와 입은 생명에 필요한 공기와 음식을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관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차가운 공기를 마시어 따뜻한 공기를 내놓는 문이고, 딱딱한 음식을 먹어 부드러운 말로 내놓는 문이지요.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차가운 공기로 나간다면 그것은 죽은 몸과 같고, 딱딱한 음식을 먹고 그대로 딱딱한 말만 내놓는다면 그건 딱딱한 기계와 다를 바 없지요.
주위가 차갑다면 따뜻하게 하는 게 인간의 중심 역할인가 봅니다. 인중 주위의 코와 입이 따뜻한 기운과 말을 내어놓도록 만들어진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인중, 사람의 중심은 그 생명의 중심이 숨 쉬는 것과 먹는 것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인중을 중심으로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이 드나드는 것이라는 가르침일까요.
인중에 손가락을 대면 고요함에 들어서니 사람의 중심은 고요함 가운데 있지요. 나의 중심이라는 인중에 손가락 하나 대봅니다. 조용히 인중 주위로 드나듦을 느낍니다.